오피니언 중앙시평

정권의 코드, 국민의 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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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사람은 지금까지 김진표.이헌재.한덕수 세 사람이다. 여기에 권오규 지명자까지 포함하면 네 사람 모두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인당 1000달러 미만일 때 공직생활을 시작해 지금의 한국 경제를 이루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전문 테크노크라트들이다. 특정 이념이나 노선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한덕수씨가 2005년 3월 경제부총리로 임명됐을 때 많은 사람이 한 부총리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기 때문에 당시까지 진행된 정부의 급진적이고 이념 편향적인 경제정책이 보다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으로 선회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지금 한 부총리는 취임 당시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퇴임을 앞두고 있다. 여당이 경제 문제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패배했고,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경제부총리가 진 것이라고 하지만,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현 경제부총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는 정권 초기부터 진행된 급진적이고 편향된 경제정책의 누적된 결과일 뿐이다. 김진표 부총리 이래 경제부총리가 한 역할이 있다면, 정권 핵심 급진세력의 이념공세가 경제를 망치는 것을 견제하고 경제에 주는 충격을 완화한 것뿐이다.

아무리 유능한 경제부총리라도 그가 가진 경제철학이 정권의 핵심 코드와 조화되지 않는다면 정책조정은커녕 자기 소신을 펴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 역대 경제부총리들의 비극이다.

이번에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권오규 정책실장도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가 비록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그의 경력과 그의 과거 언행을 볼 때 정권 핵심과 같은 코드를 가진 급진 개혁론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도 권오규 실장의 경제부총리 지명이 16개월 전 한덕수 부총리 임명 때와 같이 경제정책에 안정감과 전문성이 가미되는 계기가 되기를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정권 핵심부의 보이지 않는 코드의 벽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새 경제부총리의 임명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보통 때는 맞는 말이다. 장관이 바뀐다고 정책이 오락가락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다. 정권의 코드와 국민의 코드가 다르다는 것이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지금의 경제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지난 3년 반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리 경제가 계속 어려울 것이라는 걸 의미할 뿐이다. 책임 있는 경제부총리라면 정책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권 핵심의 급진세력과 담판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한다.

과연 새 경제부총리가 정권핵심의 급진세력과 충돌할지, 조화를 이룰지, 아니면 영합하게 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사상 최하의 지지도를 가지고 임기 말에 접어든 현 정권에서 경제수장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임기 말에 한국 경제에 어떤 문제들이 왜 발생했는지 권오규 부총리 후보자는 오랜 공직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임기 말이 다가옴에 따라 정부의 권위가 약화되고 경제정책의 약효가 떨어지고 정치 정략이 경제정책을 흔드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 취임하게 될 경제부총리는 현 정부 전임 부총리들과 과거 정권의 마지막 경제부총리들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좌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아무쪼록 성공한 경제부총리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 KDI 연구위원,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규제학회 회장, 바른사회 시민회의 공동대표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