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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교육부 깨알 규제, 쪼그라드는 대학 자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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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남윤서 교육팀 기자

남윤서 교육팀 기자

현재 고2가 치를 2021학년도 입시 계획 발표를 앞두고 대학가에서는 고려대의 움직임이 관심사다. 대부분 대학은 정시모집 확대를 요구하는 교육부 눈치를 보며 정시를 늘리고 있는데, 고려대가 반기(反旗)를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교육부는 각 대학에 2022학년도 입시부터 정시(수능 위주 전형)를 30% 이상으로 늘리라고 요구했다. 단 내신 성적 위주로 뽑는 ‘학생부 교과 전형’이 30% 이상인 대학은 정시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학생부 교과 전형은 주로 지방대가 선택하는 전형 방식이다. 정시로 학생 선발이 어려운 지방대를 위한 일종의 ‘옵션’인 셈이다.

교육부는 이러한 요구를 따르는 대학만 향후 재정지원사업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재정 지원에 목마른 대학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차츰 정시 비중을 높이는 입시 계획을 내놨다. 그런데 유독 고려대는 이들과 달리 학생부 교과 전형을 30% 이상으로 높이는 계획을 내놨다. 정시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교육부는 고려대의 입시 계획을 “정부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제도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규정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허점을 이용하는 대학이 나올 경우 재정지원사업 기준을 재검토할 수 있다”며 “평가 지표를 조정해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전국 대학 입학처장협의회가 ‘정시 30% 이상’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재논의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교육부는 모든 대학이 ‘정시 30%’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서울의 대형 대학도, 포스텍과 같은 과학 특성화 대학도, 지역의 작은 사립대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교육부가 비율까지 정해주는 입시 규제는 현미경식 대학 규제의 한 단면일 뿐이다. 온·오프라인 장벽이 허물어지는 시대지만 여전히 대학 온라인 강의는 전체 수업의 20%를 넘으면 안 된다. 학제 개편이나 학과 정원 조정, 등록금 등은 당연히 규제 대상이다. 최근 대학들은 올해 2학기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좌 수까지 규제 대상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규제 수준이 이전 정부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모자라지 않다”며 “입시 전형 비율 수치까지 제시하며 대학 자율권을 제한하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대학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교육부의 규제가 더 심해질까 걱정하고 있다. 현 정부가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 상당수를 교육청으로 이관하고 교육부는 대학에 집중하겠다고 하고 있어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달 초 기자 간담회에서 “시대가 급변하는데 중앙 정부가 모든 걸 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대학이 생존을 위해 주도적으로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대학들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때다.

남윤서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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