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청산』은 물건너 갔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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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속중인 5공 인사에 대한 사법부의 잇달은 석방 결정에 정치권이 복잡한 반응을 보이고있다.
최근 사법부는 5공 비리 혐의로 구속 중이던 이창석·전순환·서정희씨 등을 집행유예로 풀어준데 이어 이학봉 의원에 대해서도 집행 유예 결정을 내려 그 동안 정부가 서슬이 퍼렇게 (?)구속시켰던 비리의 핵심인사들이 거의 다 풀려났다.
또 검찰은 국회가 위증혐의로 고발한 허문도·이상재씨를 각각 기소 중지와 불구속기소 했다.
이 같은 판결이나 검찰의 결정에 대해 야권은 『국민의 법 감정에 어긋나는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5공 청산 작업을 사법부에 맡겨서는 될 일도 안되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로 정부·여당이 내심 5공핵심인사 처리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국회고발-사법부 처리」안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야권은 특히 최근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으로 빚어진 공안 정국의 분위기까지 가세되어 5공 청산 문제가 결국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될 가능성에 대비해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노-김종필 청와대 회담 이 후 공화당의 김 총재 주도로 5공 청산에 대한 막후 접촉이 활발히 전개되고있으나 각 당의 상반된 입장 때문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5공 청산 문제는 정호용 의원 (민정) 으로 상징되는 5공 핵심 인사 처리 문제가 계속 걸림돌이 되어 지난 5월 중진 회담 이후 계속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정당은 서경원 의원 사건을 계기로 5공 청산 문제를 아예 새로운 국면으로 옮기려는 여러 가지 시도와 암시를 보이고 있다.
박준규 대표는 캐나다 방문 중 『5공 청산 문제에 대한 4당간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이례적인 평가를 내린 뒤 5공 청산 문제에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을 때 내년의 지자제 선거에 의한 국민 심판으로 대체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당사자인 정호용 의원은 최근 대구의 한 집회에서 『광주 사태에 대해 정웅 의원은 지휘책임을 져야하고 김대중씨는 사과해야 한다』고 역공세까지 취하고 나섰다.
이러한 민정당의 태도 변화에 대해 직접 당사자인 평민당은 정호용 의원의 공직사퇴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마지노선임을 천명하고 다른 야당이 협조를 하지 않더라도 외로운 싸움을 하겠다며 장외 투쟁 의지까지 발표해 놓고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5공 청산의 거중조정역을 자임하고 나선 김종필 총재의 카드가 어느 정도 돌파력을 가질지 주목을 끌고있다.
김 총재의 복안에 대해 공화당측은 『김대중·김영삼 총재와의 개별 회담에서 협의해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종필 총재의 중재역의 활동 전망은 대체로 비관적이다.
평민당은 서 의원 사건으로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5공 청산 문제에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다. 현재의 상황에서 광주문제에 어떤 타협점을 모색하는 것 자체가 서 의원 사건과 「광주」와의 흥정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 당의 가장 중요한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까지 비난을 면치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평민당은 서 의원 사건으로 실추된 당의 이미지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5공 청산과 민주화를 좀더 강하게 촉구하는 길 밖에 없다는 판단아래 광주 문제의 원칙적인 해결을 고집하고있다.
그러나 서 의원 사건의 여파가 핵심 당직자에게까지 미칠 가능성이 여전히 남은 상황이어서 이 문제가 어떻게 풀려 나갈지 알 수 없다.
민주당도 5공 핵심 인사 6인 처리라는 야3당 총재의 합의 사항을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 총재가 소련 방문을 계기로 이념적으로 보수의 면모를 뚜렷이 부각시키며 타협정국을 모색하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유연성을 보일 것이 확실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5공 핵심 인사 처리는 6공의 정치적 미제 사안으로 남겨진 채 흘러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년이면 이미 정권 후반을 맞는 노 정부로서는 계속 이 사안을 짐으로 떠안은 채 그럭저럭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야권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상황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사법부의 잇달은 석방 결정에 야당이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으나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공세의 성격을 띤 것이며 오히려 막후에서는 청산을 위한 모색이 더욱 활기를 띠어 갈 전망이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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