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기술의 현주소와 ‘1초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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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인공지능은 모든 산업 분야를 혁신하고 있다. 그래서 머지않아 공장에서는 로봇들만 일하게 되고, 도로에는 자율주행차만 다니는 세상이 도래할 것 같다는 위기감도 든다. 하지만 현업에서 체감하는 온도는 다르다. 인공지능이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려고 하면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은 무슨 일은 할 수 있고, 무슨 일은 할 수 없을까?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스탠포드 대학의 앤드루 응(Andrew Ng) 교수가 제시한 답변이 매우 흥미롭다. 응 교수는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소 구글 브레인을 설립하였고, 중국 바이두의 인공지능 팀을 이끌기도 한 세계적인 인공지능 전문가다. 그는 올해 초 인공지능을 도입하려는 기업가들을 위한 강의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간단한 방법으로 ‘1초의 법칙’을 제안했다. 요지는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은 사람이 1초 이내에 할 수 있는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이다. 스팸 메일을 분류하고,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며, 도로 표지판을 읽고 이해하는 일 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순식간에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이런 작업을 잘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충분히 제공된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다.

인공지능 4/24

인공지능 4/24

이에 비해 만약 사람이 1초 이내에 해낼 수 없는 일이라면, 지금의 인공지능 수준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엄밀한 공학적 근거가 있는 설명은 아니지만, 그가 직접 몸담았던 수많은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적으로 체득한 결론이니, 일응 신뢰할 만한 기준이라 보아도 괜찮을 법 싶다. 물론 복잡한 계산과 같이 원래부터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나, 체스나 바둑 게임과 같은 예외도 있다. 그러니 그의 설명은 대강의 규칙(rule of thumb)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응 교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의 고객 이메일을 처리하는 사례를 예로 든다. 현재의 인공지능이 고객 이메일을 읽고 적절한 답변 초안을 작성해낼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면 최신 기술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고객 요청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생각해 내는 것은 사람에게도 1초보다 오래 걸리는 복잡한 작업이다. 그러니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로는 아직 이러한 작업을 자동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객 이메일을 환불 요구, 배송 지연, 제품 파손 등과 같이 미리 정해져 있는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이 고객 이메일을 자동으로 분류해서 적절한 회신 책임자를 지정하는데 쓸 수 있다. 즉,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편에 가깝다.

‘1초의 법칙’은 우리에게 지금 현실에서 가능한 기술과 공상과학 소설 속의 상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공지능 기술을 과소평가하여 변화를 거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에 큰 기대감을 갖거나 불필요한 불안감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인공지능 기술이 당신의 일을 대체할 것인지 걱정이 되는가? 그럼 1초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