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깨지지 않는「관존의 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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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모 그룹 기획실에 근무하는 유모이사(46)는 며칠 전 정부 부처를 찾았다가 봉변하고 돌아왔다. 사무실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말을 건넸으나 상대방은 힐끗 쳐다보며『내 소관이 아니다』며 자리를 떴다. 퉁명스러운 태도에 다소 무안해진 유 이사는 옆 좌석 여직원에게 담당자를 물어본 후 더욱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자신이 찾고있는 담당직원은 바로 옆 좌석에서, 두번씩이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 자신을 태연스럽게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협조를 받아야할 처지이므로 담당직원에게 무슨 일로 상의할게 있어 봤다며 정중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앉으라』는 말 한마디 없이 명함만 슬쩍 쳐다보고는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 다음에 오라』며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툭하면 보고하라>
『앉으라는 말 한마디하는데 그렇게 인색할 필요가 있습니까. 업무협의는 커녕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오면서 아직 멀었구나 싶더군요.』유 이사의 씁쓸한 푸념이다.
지방에 공장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중앙부처와 관할도청 및 시·군청을 수시로 드나든다는 사업가 정모씨(54)는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지방관청의 경우 담당계장을 한번 만나기라도 하려면 아는 사람을 통해 성의를 표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허가업무의 경우 중간결재 과정은 관청끼리 처리해야 하는데도 업자들에게 떠맡기기 일쑤라는 것. 또 툭하면 전화를 걸어 『들어와서 설명하라』고 하는 바람에 사업상 중요한 약속마저도 펑크내기 십상이라며「보고를 받으려는 고압적인 자세」를 힐난했다.
이 같은 현상은 관청뿐 아니라 일반시민을 상대로 하는 일선 행정기관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다.
가정주부 유모씨(26)는 지난 5월29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 지부지원에 등기부 등본을 떼러갔다가『퇴근시간이 다 됐는데 이제 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담당직원과 언쟁만 벌이고 돌아왔다며 신문사에 호소해 왔다.
회사원 유 이사, 사업가 정씨, 가정주부 유씨의 눈에 비친 일부 공무원들의 모습은 「군림하는 관존」의 사례들.
「국민의 공양」「봉사하는 행정」을 내세우며 권위주의 타파를 구두선 처럼 되풀이하고 있지만「관존」의 벽이 아직까지 허물어지지 않는 것은「관은 다스리며 베푸는 곳」이란 인식이 잔존해 있기 때문이다.
관존의 인식구조는 일선기관의 일부 공직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경제를 뒤흔들었던 대미 통상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보여준 대처방식에서도 관존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84년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반 덤핑과세를 계기로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최근 본격화되면서 우리정부와 기업들은 줄곧 미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에만 매달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고비 때마다 미 의회와 민간업계의 반발에 부닥쳐 정작 큰 실효를 거두기 힘들었다.

<좌석도 귀빈위주>
미국의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 행정부 못지 않게 의회나 민간업계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매사를 관 위주로 해결해온 우리정부와 기업들의「체질」에 연유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국가의 장래가 걸린「국가 지 대사」까지 관존의 의식구조 때문에 그르치게 됐다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관존의 환부가 얼마나 깊고 넓게 퍼져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외국인들의 시각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한 외국인들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자국선수단을 위해 마련한 안내책자에는『한국의 관리들을 만나거나 교제할 때는 사석이라 할지라도 이름대신 직위를 붙여 부르면 매우 효과적』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 서울올림픽 시설 점검을 맡았던 IOC관계자는 『경기장과 그 시설물은 선수와 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로열박스(귀빈석)위주로 돼있다』며 이는 주객이 전도된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소형차는 푸대접>
실제로 잠실 농구장은 주 전광판이 로열박스 맞은편에 설치돼 있어 팀 벤치나 코칭스태프에서 스코어를 갈 볼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보조 전광판을 설치했고 장충체육관은 로열박스를 축소하느라 불필요한 예산을 투입했었다.
뉴욕타임스지는 최근『한국의 민주화길, 상충된 유산으로 포장되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한국에서는 계급의식이 여전히 사회일각을 이루고 있으며 권위주의와 위계질서의 오랜 역사가 민주주의 실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존 의식이 이처럼 병폐로 지적되는 것은 공복의식의 부족이란 점도 있지만 국민에 대해 우월감을 갖는 특권의식이 뒤따르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을 심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권의식에 밀리고 눌릴 때 국민들은 무력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마련이며 관존 의식 속에는 지배와 복종만 있을 뿐 평등도, 공동도, 연대감도, 협동심도 희박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관존의 병인을 도려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 국민 스스로가 관을 지나치게 선호하며 관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비굴한 자세를 취해온 점도 관존의 뿌리를 깊게 만든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20대 젊은 판·검사에게 「영감」이란 호칭이 아직까지 통용되는 것이나 고급 승용차의80% 이상이 권위를 상징하는 검정색일 만큼 관을 선호하고 있다. 또 호텔입구에서 소형차를 타고 갈 때와 고급승용차를 타고 갈 때 대접이 다른 것이 우리의 생활풍토다.
물론 공직자의 자부심이 결코 역기능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60년대의 낙후성에서 탈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테크너크랫을 자처하며 큰 역할을 해낸 계층이 바로 엘리트 관료 그룹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과 같은 건전한 자긍심을 지닌 공직자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때 관존 이라는 고질병은 치유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자·국민 모두가 끊임없는「자기개혁」을 이룩해야할 것으로 요구되고 있다.
이대 김대환 교수(사회학)는 높은 도덕성과 전문적인 지식, 그리고 투철한 소명 의식을 갖춘 엘리트 관료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이들의 양성을 위해서는 엘리트 관료들의 권위가 인정되고 보호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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