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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로도 폼페이오 비토했던 김정은 ‘미국 흔들기’ 가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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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호 03면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오른쪽부터) 등이 확대회담에 앞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오른쪽부터) 등이 확대회담에 앞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수차례에 걸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과 함께 협상 대표 교체를 요구했던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하노이 회담 전 트럼프에 교체 요구 #폼페이오 내용 알아 … ‘노딜’에 영향 #북 “폼페이오 끼면 일이 꼬여” 비난 #북·미 협상 재개에 걸림돌로 작용 #김정은·푸틴, 25일께 첫 정상회담 #경협보다 비핵화 협상안 논의할 듯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날 중앙SUNDAY에 “북한이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한 게 미국 정부 입장에선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며 “김 위원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보낸 친서에서도 여러 번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확인된 것만 해도 지난해부터 최소 7~8차례에 걸쳐 친서를 주고받았다.

북·중 수교 70주년 맞아 시진핑 방북도 추진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을 폼페이오 장관도 잘 알고 있으며, 이게 하노이 ‘노딜’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한발 빼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지난 18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하노이 수뇌 회담의 교훈에 비춰 봐도 일이 될 만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였다. 앞으로도 폼페이오가 관여하면 또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며 교체를 주장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권 국장 발언 이후인 지난 18일 ‘북한에 대한 공개 메시지가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미소만 띤 채 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겐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 교체를 공개 요구했다는 점은 향후 북·미 협상 재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CNN 방송은 “문제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폼페이오 장관을 교체할 경우 ‘나약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고, 그렇다고 계속 맡길 경우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는 데 동의할 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공개적인 ‘미국 흔들기’와 함께 김 위원장은 이달 하순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다. 크렘린궁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 초청으로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구체적 방문 시기와 회담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본 교도통신은 러시아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24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루스키섬 극동연방대학에서 만찬을 함께 하고, 다음날에는 단독 회담과 확대 회담을 가질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집사 격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지난 17일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점검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번 하노이 방문 때처럼 특별열차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북·러 관계에 밝은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하노이 회담이 잘될 거라고 예상한 북한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과 함께 준비했던 일정으로 알고 있다”며 “따라서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기 때문에 러시아에 가는 것이란 분석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은 올해 수교 70주년을 맞아 시 주석의 방북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이 김 위원장의 방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북한이 하노이에서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유엔 제재 해제 맞교환이 이뤄졌더라면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경협 강화 방안을 주로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노딜 상황에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 17~18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의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을 막기 위해 견제구를 날렸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에선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밝힌 향후 북한의 비핵화 협상 입장에 대한 양국 간 조율 방안이 우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주목되는 건 북한이 앞으로 미국의 비핵화 상응조치로 군사 분야 조치를 들고나올 가능성이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하노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 vs 유엔 제재 해제’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김정은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할 수도

조선신보도 지난 14일 “조선이 제재 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 조치로 적대시 정책 철회 의지와 (북·미) 관계 개선 의지,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전쟁 위협을 없애 나가는 군사 분야 조치는 미국이 아직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고 제재의 부분 해제를 상응조치로 제안했던 것”이라는 하노이 노딜 직후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발언을 전했다.

특히 이 신문은 2016년 7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밝힌 이른바 ‘조선반도 비핵화’를 거론했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핵무기와 핵기지 검증·철폐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중단 ▶핵 불(不)사용 약속 ▶주한미군 철수 등 다섯 가지를 한·미에 요구했다. 그런 만큼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조선반도 비핵화 방안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러시아의 협조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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