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사립고 폐지 정책에 대한 풍선효과로 ‘강남 8학군’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자사고의 ‘우선선발권 박탈’을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이 같은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1일 헌재는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 금지'는 위헌으로, ‘우선선발권 박탈’은 합헌으로 결정했다. 자사고 지원자들도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파국은 면했지만, 자사고 입장에선 우수학생을 미리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돼 타격이 크다. 특히 자사고 지정 권한을 가진 각 교육청이 올해 재지정 평가기준을 60점에서 70~80점으로 대폭 상향하면서 자사고 폐지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특히 올해 13개 자사고가 재지정 대상인 서울지역에선 평가 기준을 놓고 교육청과 자사고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평가 기준이 자사고에 불리한 요소들로만 이뤄져 있다”며 “자사고들이 자체적으로 모의평가를 해보니 70점 넘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자사고가 없어질 것이라는 실망감에 초·중학생 학부모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3월 종로학원하늘교육이 학부모 7880명을 조사한 결과 영재학교 선호도는 지난해 15%에서 올해 23.6%로 급증했다. 과학고도 같은 기간 14.1%에서 18.2%로 늘었다. 반면 자사고 선호도는 48.4%에서 40.7%로 떨어졌다. 임성호 대표는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하는데 자사고의 존폐가 불투명하다보니 다른 형태의 학교로 관심이 쏠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학고·영재학교는 모집인원이 적고, 주로 이과계열의 학생만 진학 가능해 자사고를 대체할 새로운 학교가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서울 강남지역의 명문고들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모집정원의 70%가 넘는 수시에선 학생의 능력뿐 아니라 학교의 지원도 큰 몫을 한다”며 “입시 노하우를 갖춘 강남 학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시모집에서 강남의 약진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서울지역의 서울대 수시합격자를 분석해보니 강남구 출신은 2007년 8%에서 2018년 15.7%로, 서초구는 4.9%에서 11.7%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서울대 수시모집 비율은 46.9%에서 78.5%로 늘었다. 전통적으로 ‘8학군’은 강남·서초구 일대의 학교를 말한다.
그렇다 보니 강남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초·중학생 자녀를 둔 서울의 비강남권 학부모 632명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59.5%가 ‘자사고·외고 폐지 후 비강남의 대입 경쟁력 떨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48.4%는 ‘여건이 허락되면 강남으로 이사 갈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 동안 감소 추세에 있던 강남 지역으로의 위장전입도 늘었다.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 서울에서 적발된 위장전입은 423건으로 2016년(261건)보다 62.1% 증가했다. 이중 ‘강남·서초’ 지역이 64건(15%), 목동이 포함된 ‘강서·양천’ 지역이 69건(16%)이었다. 특히 2018년 1∼7월 적발된 서울의 위장전입 건 중에선 ‘강남·서초’(21%)가 제일 많았다.
임성호 대표는 “지금까지는 비강남에 있는 자사고·외고 때문에 지역 분산 효과가 있었지만, 폐지 후엔 ‘강남 8학군’이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방도 마찬가지다. 과거 우동기 전 대구시교육감은 “대구에서 자사고는 (교육특구인) 수성구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을 반대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준화 정책이 시작된 70~80년대와 달리 소득이 늘고 자녀 숫자가 줄면서 교육에 대한 수요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 1592달러에 2018년 3만1349달러로 20배가량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출산율은 2.8명에서 0.98명으로 줄었다. 김 교수는 "자녀 한 명당 부모가 쏟는 관심과 비용이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다"며 “모든 고교를 일반고로 획일화할 게 아니라 학생·학부모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