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으로 ‘자사고 폐지’ 계속, ‘강남 8학군’ 부활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서울 자율형사립고 학부모연합회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 반대를 촉구하며 조희연 교육감과의 만남을 요청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일 서울 자율형사립고 학부모연합회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 반대를 촉구하며 조희연 교육감과의 만남을 요청하고 있다. [뉴시스]

자율형사립고 폐지 정책에 대한 풍선효과로 ‘강남 8학군’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자사고의 ‘우선선발권 박탈’을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이 같은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1일 헌재는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 금지'는 위헌으로, ‘우선선발권 박탈’은 합헌으로 결정했다. 자사고 지원자들도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파국은 면했지만, 자사고 입장에선 우수학생을 미리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돼 타격이 크다. 특히 자사고 지정 권한을 가진 각 교육청이 올해 재지정 평가기준을 60점에서 70~80점으로 대폭 상향하면서 자사고 폐지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특히 올해 13개 자사고가 재지정 대상인 서울지역에선 평가 기준을 놓고 교육청과 자사고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평가 기준이 자사고에 불리한 요소들로만 이뤄져 있다”며 “자사고들이 자체적으로 모의평가를 해보니 70점 넘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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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사고가 없어질 것이라는 실망감에 초·중학생 학부모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3월 종로학원하늘교육이 학부모 7880명을 조사한 결과 영재학교 선호도는 지난해 15%에서 올해 23.6%로 급증했다. 과학고도 같은 기간 14.1%에서 18.2%로 늘었다. 반면 자사고 선호도는 48.4%에서 40.7%로 떨어졌다. 임성호 대표는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하는데 자사고의 존폐가 불투명하다보니 다른 형태의 학교로 관심이 쏠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학고·영재학교는 모집인원이 적고, 주로 이과계열의 학생만 진학 가능해 자사고를 대체할 새로운 학교가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서울 강남지역의 명문고들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모집정원의 70%가 넘는 수시에선 학생의 능력뿐 아니라 학교의 지원도 큰 몫을 한다”며 “입시 노하우를 갖춘 강남 학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시모집에서 강남의 약진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서울지역의 서울대 수시합격자를 분석해보니 강남구 출신은 2007년 8%에서 2018년 15.7%로, 서초구는 4.9%에서 11.7%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서울대 수시모집 비율은 46.9%에서 78.5%로 늘었다. 전통적으로 ‘8학군’은 강남·서초구 일대의 학교를 말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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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보니 강남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초·중학생 자녀를 둔 서울의 비강남권 학부모 632명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59.5%가 ‘자사고·외고 폐지 후 비강남의 대입 경쟁력 떨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48.4%는 ‘여건이 허락되면 강남으로 이사 갈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 동안 감소 추세에 있던 강남 지역으로의 위장전입도 늘었다.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 서울에서 적발된 위장전입은 423건으로 2016년(261건)보다 62.1% 증가했다. 이중 ‘강남·서초’ 지역이 64건(15%), 목동이 포함된 ‘강서·양천’ 지역이 69건(16%)이었다. 특히 2018년 1∼7월 적발된 서울의 위장전입 건 중에선 ‘강남·서초’(21%)가 제일 많았다.

 임성호 대표는 “지금까지는 비강남에 있는 자사고·외고 때문에 지역 분산 효과가 있었지만, 폐지 후엔 ‘강남 8학군’이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방도 마찬가지다. 과거 우동기 전 대구시교육감은 “대구에서 자사고는 (교육특구인) 수성구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을 반대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준화 정책이 시작된 70~80년대와 달리 소득이 늘고 자녀 숫자가 줄면서 교육에 대한 수요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 1592달러에 2018년 3만1349달러로 20배가량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출산율은 2.8명에서 0.98명으로 줄었다. 김 교수는 "자녀 한 명당 부모가 쏟는 관심과 비용이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다"며 “모든 고교를 일반고로 획일화할 게 아니라 학생·학부모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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