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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생산 놓고 삐걱···파국으로 달려가는 자동차 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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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르노, 신차 부산 대신 스페인 생산案 검토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공장의 현장 책임자들과 간담회를 진행 중인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가운데). [사진 르노삼성차]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공장의 현장 책임자들과 간담회를 진행 중인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가운데). [사진 르노삼성차]

국내 주요 자동차 제조사에서 노사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한 수준으로 빠져들고 있다.

르노삼성차 기업노동조합(르노삼성차 노조)은 10일 53번째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지난해 6월 이후 10개월째 진행 중인 임금·단체협약 협상을 위한 실력행사다.

9일 25차 협상에서 르노삼성차 노조는 인사권을 추가로 요구했다. 근로자를 전환 배치할 경우 노조 합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기인 르노삼성차 제조본부장(부사장)은 “노사교섭·파업 장기화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파국은 피해 달라”고 당부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부산공장에서 생산하는 닛산의 SUV 로그. [사진 닛산자동차]

부산공장에서 생산하는 닛산의 SUV 로그. [사진 닛산자동차]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은 존폐기로에 서 있다. 부산공장에서 생산하는 닛산자동차의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생산 계약이 오는 9월 종료한다. 르노그룹 본사는 지난달 로그의 위탁생산 물량을 하향조정했다(10만대→6만대).

르노삼성차는 로그 위탁을 한시적으로 추가·배정받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노사갈등 장기화로 사실상 어려워졌다. 또 내년 국내 생산 예정인 쿠페형 SUV(LJL·국내명 XM3)를 유럽에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프랑스 본사가 부정적인 입장이다. 르노삼성차 기업노조 설립 이후 최장기간 파업 신기록을 수립하면서다. 부산공장 대신 스페인공장에서 LJL을 생산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한국GM 노조, 노동쟁의 신청

지난해 한국GM이 법인분리를 결정하자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한 한국GM 노조. [중앙포토]

지난해 한국GM이 법인분리를 결정하자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한 한국GM 노조. [중앙포토]

민주노총 한국GM지부(한국GM 노조)도 파업을 모색 중이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신설법인(GM테크니컬센터코리아) 단체협상을 두고 노사 갈등이 심화하면서다. 지금까지 여덟 차례 진행한 노사협상에서 한국GM 노사는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가 제시한 단체협약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지난 3일 한국GM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11일부터 조정회의를 시작한다. 15일까지 조정이 성립하지 못하면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위원회는 조정중지 또는 행정지도 결정을 내린다. 여기서 조정중지를 결정하고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과반이 쟁의행위에 찬성할 경우, 노조는 파업권을 확보한다.

기아차, 합의 뒤집고 생산 중단 요구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정문. [중앙포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정문. [중앙포토]

현대·기아차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 기아자동차지부(기아차 노조)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미국 공장에서 제조하는 일부 차종(텔루라이드·SP2)의 생산 중단을 요구했다. 해외 생산 차종을 국내서 만들라는 요구다.

전임 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해당 차종을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안에 합의했었다. 대형 SUV 텔루라이드가 북미 전용 차량이기 때문이다. 소형 SUV SP2를 화성·인도공장에서 각각 생산하는 방안도 동의했었다. 한국 완성차를 인도 현지에 수출하는 경우 관세가 붙어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기아차 단체협약은 신차 생산 공장을 배정할 때 노조와 합의를 규정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도 연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현대차지부(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를 저지하기 위해서 ‘3년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현대차 노조는 사측에 ‘근로자 1만명을 신규 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025년까지 1만7500명이 정년퇴직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차는 이르면 다음달 2019년 임금(단체)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강경 대치에 판매량 고꾸라져…지역경제 위기

국내 완성차 제조사 노사가 갈등하는 사이 판매량도 타격을 받고 있다. 로그 수출 물량이 감소한 르노삼성차 지난달 국내·외 판매대수(1만2796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9% 감소했다. 한때 국산차 업계에서 굳건한 3위였던 한국GM(6420대·내수기준)은 이제 ‘굳건한 꼴찌’로 자리매김했다.

기아차 지난달 판매량(4만4233대)도 전년 동월 대비 8.9% 감소했다. 현대차는 판매량(+6.7%)이 늘었지만 돈을 못 번다. 지난해 국내 공장이 창립 44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손실(-593억원)을 기록했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후폭풍도 거세지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르노삼성차가 파업을 시작한 이래 30여개 협력사는 납품물량이 15~40% 감소했다. 차가 안 팔리면서 한국GM은 부평2·창원공장 생산물량 축소를 고려하고 있다. 인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인천 자동차 부품사 2분기 경기실사지수(BSI)는 50을 기록했다. BSI 지수가 100 미만이면 경기가 안 좋다고 응답한 기업이 더 많다는 걸 뜻한다. 이 지수가 50이라는 것은 인천 부품기업 4개 중 3개가 지난해보다 올 2분기 경기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는 의미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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