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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축」의 실상과 허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형식적 대칭성의 눈으로 본다면 8일 동안 열리는 「평양 세계 청년 학생 축전」은 지난해 우리가 치른 88올림픽 대회에 대한 북한의 응수로 단순하게 평가할 수도 있다.
우리 민족 전체의 자랑이 될 수있었던 올림픽이 북한의 불참으로 우리 단독으로 치러지고, 그 자리에 북한의 이념적 동지들이 평양 측의 만류를 뿌리치며 참가한 사실에 대해 북한 당국은 심한 심리적 좌절감과 열등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남한에 대해 경쟁의식을 보여온 북한으로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올림픽대회에 견줄만한 행사를 벌여야할 내외적 필요를 강하게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남북한 관계 정상화의 앞날을 위해서는 서로간에 우열이 심화되기보다는 서로를 평정한 마음가짐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면 「평양축전」의 성공적 개최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거기에는 우리가 마음으로부터의 축하를 보낼 수 없는 측면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이 축전 자체가 처음부터 어느 한쪽을 증오하고 규탄하는 행사위주로 계획됐다는 점이다. 가령「제국주의자들의 범죄적 죄행을 폭로·규탄하는 반제 재판소」라는 프로를 마련하여 자기네 정치 선전을 늘어놓으며 「한미관계」를 성토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통일이 안 되는 것은 남한과 미국의 방해 때문이라는 논리가 그 밑바닥에 짙게 깔렸다.
다음은 평양 축전이 대남 교란이라는 공작적 차원의 성격을 수반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행사에 남한의 반정부 세력을 참가시키기 위해 오래전부터 전대협을 상대로 정치공작을 벌였다. 우리 대학생의 단체참가가 불가능해지자 단신으로 입북한 임수경양을 내세워 자기네 선전에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표리 부동한 이 행사의 2중 성격이다. 평양 당국은 북한을 지상천국인양 선전하면서도 핀란드의 앰네스티 (국제사면위원회)대표단의 입국을 거부하여 항의를 받았다. 덴마크 대표단은 개막식장에서「북한에도 인권을!」이라고 쓴 깃발을 휘두르다가 강제 퇴장 당했다. 평양당국이 수많은 사상범을 투옥하고 인간의 기본권마저 억압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북한이 능력의 한계를 넘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넣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를 위해 45억 달러를 들여 2백60개의 시설물을 새로 만들었다. 벤츠 자동차도 1천대나 구입했다. 외화 부족으로 외채 상환도 못하는 북한으로서는 무리한 낭비다.
소련 공산 청년 동맹 기관지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까지도 『지구상에서 수천만이 굶고 있을 때 기념행사에 거액을 소비한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이번 행사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에 동조하는 외국 세력들 사이에서조차 인권을 요구하고, 천안문 광장의 민주화 운동이 무참하게 짓 밟힌데 대한 항의가 터져 나오고 있는 현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음미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남한에서 진행중인 민주화와 비슷한 형태로 자신들도 변신하지 않는다면 통일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북한 당국자들은 이 점을 인식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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