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화마 아직도 '생생'…트라우마 호소하는 피해 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 이틀째인 5일 오후 고성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주민 대피소에서 재난심리상담사가 서류를 살피고 있다.[연합뉴스]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 이틀째인 5일 오후 고성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주민 대피소에서 재난심리상담사가 서류를 살피고 있다.[연합뉴스]

강원산불 발생 닷새째인 8일 피해 주민 상당수가 정신적 불안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현장에 지원을 나가 있는 김주연 강원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상담가는 "이번 산불로 주택 등을 잃은 주민 일부는 '눈을 감아도 산불이 보인다'며 '플래시백' 증상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피 당시 걸려온 전화벨 소리가 반복해서 들리는 등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 피해자도 있었다.

의료지원에 나선 강원도 한의사협회의료봉사단 관계자는 "주민들이 소화불량, 몸살, 두통, 근육통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며 "특히 고령 주민들은 머릿속이 복잡해 몸이 아파도 그냥 참다가 자녀 손에 이끌려 진단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7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에 국가트라우마센터 이동식진료소가 차려졌다. 상담활동가들은 쉴 새 없이 주민들을 만나 '산불 트라우마'를 지워내는 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연합뉴스]

7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에 국가트라우마센터 이동식진료소가 차려졌다. 상담활동가들은 쉴 새 없이 주민들을 만나 '산불 트라우마'를 지워내는 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산불 피해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심리 상담 전문가 34명을 산불 피해 현장에 급파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설립된 국가 트라우마 센터 소속으로, 이번 산불로 인해 센터가 처음 가동됐다.

이처럼 화재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상담과 치료가 이어지고 있지만 피해 현장이 광범위하고, 상담이 필요한 대상자들이 많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 다른 봉사단의 경우 대피소 한쪽에 침상 4개를 놓고 현장에서 침을 놓거나 약 처방을 하며 주민들을 돕고 있지만 환경과 장비가 열악해 보강이 시급한 상태다.

한편 고성군 천진초교 내 임시대피소에서 재난 심리회복 지원 활동을 하는 정신건강상담지원센터 관계자는 "지난 5일부터 지원 활동을 펼쳐 고성과 속초 주민 154명의 심리회복을 도왔다"며 "도움이 필요한 주민이 많다"고 밝혔다.

이들은 애초 2박 3일 동안 의료봉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도움이 필요한 피해주민이 많아 봉사활동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에 따르면 현재 산불피해 현장에는 재난 심리상담가 77명이 투입돼 주민들의 '산불 트라우마'를 돕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5일부터 이날 현재까지 319건을 상담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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