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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억 소방차 안 부러운 맹활약...우리동네 산불조심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일 강원도 고성과 속초 일대에 큰 산불이 나자 전국의 소방 장비가 태백산맥을 넘어갔다. 소방헬기 51대와 소방차 820여대가 투입돼 총력전을 벌인 끝에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 한 화재에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화재 진압 작전에는 ‘트랜스포머 소방차’로 불리는 18억 원 상당의 ‘로젠바우어판터’와 7억원 짜리 고성능화학차 등 엄청난 규모의 소방장비들도 총출동했다.

논밭, 골목 누비며 산불 초기 진화 및 주민 대피 일등공신

소방차 로젠바우어 판터. 최대 1만6800리터의 물과 2200리터의 거품 화합물, 250kg의 분말을 저장할 수 있다. 분당 1만리터의 물을 분사한다. 무게가 50톤인데도 시속 130km로 달린다. 가격은 18억원. [중앙포토]

소방차 로젠바우어 판터. 최대 1만6800리터의 물과 2200리터의 거품 화합물, 250kg의 분말을 저장할 수 있다. 분당 1만리터의 물을 분사한다. 무게가 50톤인데도 시속 130km로 달린다. 가격은 18억원. [중앙포토]

 그런데 이런 거대한 장비 못지 않게 화재 초기에 산골 구석구석을 다니며 맹활약을 한 '미니 소방차'가 화제다. 이른바 '산불조심차'. 이 자그마한 차량은 각 읍, 면, 동사무소에서 보유한 소형 살수차다. 강릉시청에도 3대가 있다. 평소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스피커로 ‘산불을 조심하라’는 방송을 한다. 트럭에 1000리터짜리 물탱크를 실을 수 있어 유사시엔 정식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작은 불을 끈다.

옥계면사무소 산불조심차. 최대 1000리터까지 물을 실을 수 있지만, 꽉 채우면 운전이 힘들어서 기동성이 떨어질까봐 평소엔 900리터만 채워서 다닌다. 4륜 구동이며 차량 최소 회전반경이 작아 차선 이동과 골목길 진입에 유리하다. 가격은 2000만 원대로 알려졌다. 편광현 기자

옥계면사무소 산불조심차. 최대 1000리터까지 물을 실을 수 있지만, 꽉 채우면 운전이 힘들어서 기동성이 떨어질까봐 평소엔 900리터만 채워서 다닌다. 4륜 구동이며 차량 최소 회전반경이 작아 차선 이동과 골목길 진입에 유리하다. 가격은 2000만 원대로 알려졌다. 편광현 기자

 강릉시 옥계면사무소 산불예방과가 운영하는 ‘산불조심차’는 불이 강풍을 타고 무섭게 번지던 지난 5일 새벽 주민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질주했다. 차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평소 “산불 조심하십시오”라는 음성 대신, “빨리 대피하십시오”라는 음성을 크게 내보내 잠든 주민들을 깨웠다. 정만화 남양1리 이장은 “산불조심차가 화재 초기부터 정신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깨웠다”며 “그 소리를 듣고 대피한 주민들이 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조심차는 이번 화재진압에서도 일당백의 기여를 했다. 작은 몸집을 활용해 대형소방차가 가기 힘든 비좁은 도로나 논밭을 가로질러 달렸다. 남양리 주민 김모(65)씨는 “도로 안쪽 집들이 불타고 있는데 큰 소방차들은 그냥 지나갔다”면서 “그 뒤에 산불조심차가 나타나더니 불을 꺼줬다”고 말했다. 이날 인근 읍·면·동에서 출동한 산불조심차들은 아침이 될 때까지 맹활약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첨단 장비들이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수밖에 없다. 읍·면·동에서 운영하는 산불조심차의 경우 마을로 빠르게 출동할 수 있고, 길도 잘 알기 때문에 초기 대처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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