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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점집서 시작됐다?···강원 초대형 산불 발화점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 발화 지점에 설치된 전신주. 빨간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절단된 피뢰기 연결선. [강형구 교통대 교수]

지난 4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 발화 지점에 설치된 전신주. 빨간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절단된 피뢰기 연결선. [강형구 교통대 교수]

강원도에서 잇따라 발생한 초대형 산불의 발화 원인이 미궁이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이번 산불이 강원 고성군 토성면의 한 전신주, 강릉시 옥계면의 민가 인근 , 인제군 남면 야산에서 시차를 두고 발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성·속초 산불 …전신주 개폐기 케이블에서 왜 불꽃튀었나 . #한전, 전신주 피뢰기 연결선 3개 최근 제거 #한전 "케이블 이탈이 불꽃 원인…피뢰기 관련성 없어" # 강릉 산불… 발화지는 점집 인근 추정 , 집주인 "향로·촛불 안켰다" # 경찰은 자연발화 가능성과 함께 불에 탄 제단(祭壇) 등 수사 # # 인제 산불…자연발화와 실화 가능성 모두 수사 중

7일 오전 찾아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도로변 전신주. 고성·속초 산불의 발화 지점을 추정되는 곳이다. 경찰은 지난 4일 오후 7시 17분 이 전신주 개폐기 부근에서 불꽃이 튀면서 산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 주변은 검게 탄 나무와 열에 녹아내린 전선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유리관으로 된 퓨즈와 전신주에서 떨어진 철제 밴드도 보였다.

한전은 고압(2만2900V) 전선과 연결된 개폐기 케이블 3개 중 1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불꽃이 튀었고, 이 불꽃이 전신주 밑에 있는 나무 등에 옮겨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개폐기 케이블이 떨어져 나간 것은 ‘합선이나 외부 충격에 의한 절단’으로 보고 있다. 개폐기는 전신주에 달린 일종의 차단기다.

발화 추정지점 점검하는 관계자들   (고성=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5일 오전 전날 고성 산불의 발화지로 추정되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2019.4.5   kims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발화 추정지점 점검하는 관계자들 (고성=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5일 오전 전날 고성 산불의 발화지로 추정되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2019.4.5 kims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채현 한전 속초지사장은 “긴 나뭇가지가 전선 2개에 걸치거나, 비닐이나 나뭇잎 등 이물질이 개폐기 케이블이나 전선에 달라붙으면 합선이 일어나 ‘퍽’하며 선이 끊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끊어진 케이블에서 발생한 불꽃이 주변으로 튀는 바람에 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강형구 한국교통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강풍으로 전선이 마찰을 일으키며 약해졌다가 끊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부 물체가 날라와 끊었거나 이물질이 날아와 합선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발화지점 전신주에 달린 피뢰기 연결선 3개가 모두 끊어진 것에 의혹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피뢰기는 낙뢰나 과전류로부터 개폐기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장비다. 전기설비 업체서 40여년 근무한 김모(65)씨는 “개폐기 케이블 외에도 피뢰기 연결선이 모두 끊어진 것은 사고 당시 선로에 이상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은 최근 피뢰기 연결선 3개를 인위적으로 제거했다고 밝혔다. 한전은 “피뢰기의 특정 제원에 불량이 집중적으로 발견돼 정전 예방을 위해서 연결선을 모두 제거했다”며 “규정상 3개가 연결돼 있어야 하는게 맞다”고 했다. 다만 “피뢰기는 주로 낙뢰로부터 개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사고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강릉 산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옥계면 골짜기의 한 민가. 이 집 뒤편에는 불에 탄 제단이 발견됐다. 편광현 기자

강릉 산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옥계면 골짜기의 한 민가. 이 집 뒤편에는 불에 탄 제단이 발견됐다. 편광현 기자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기안전공사는 지난 5일 고성 산불의 발화지점에 대한 합동감식을 하고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조사결과 계폐기와 전선을 관리하는 한전의 책임이 입증될 경우 한전은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

강릉 산불의 발화지점은 강릉시 옥계면 산골짜기에 위치한 민가 인근이다. 경찰은 지난 4일 오후 11시 46분쯤 민가 인근에서 불이 나 인근 야산으로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릉 산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옥계면 골짜기의 한 민가. 이 집 뒤편에는 불에 탄 제단이 발견됐다. 편광현 기자

강릉 산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옥계면 골짜기의 한 민가. 이 집 뒤편에는 불에 탄 제단이 발견됐다. 편광현 기자

지난 5일 이 집 앞에 가보니 돌기둥에 빨간 글씨로 써진 ‘산당(山堂)’이란 문구가 보였다. 제사를 지내거나 기도를 드리는 장소란 뜻이다. 이 마을의 한 주민은 “그 집 주인이 수십여년 전부터 점괘를 봐 왔다. 집에 기도를 하는 제단(祭壇)이 마련돼 있다”고 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촛불이 바람에 날려 불이 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집 주인 A씨의 딸이 연탄불을 갈러 나왔다가 산에 불이 붙은 걸 보고 소방에 신고했다”며 “A씨는 불이 나기 전에 제단에 있는 향로와 양초에 불을 켜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불이 난 원인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실화 가능성을 포함해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 4일 오후 2시45분쯤 강원 인제군 남면 남전리 약수터 인근 야산에 발생한 산불의 원인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목격자가 없어 이 산불이 자연발화인지, 실화에 의한 것인지를 조사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인제경찰서 관계자는 “인제 산불은 최초 발화지점이 민가 위쪽에 있는 야산”이라며 “아직 정확한 화재원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실화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은 기관이나 개인은 민사소송을 통해 산불 가해자를 상대로 피해보상이나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다. 민사는 대부분 산불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진 뒤 진행된다. 검찰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산불의 원인이 과실로 드러나면 형사상 처벌은 물론 손해배상도 요구할 수 있다”며 “다만 과실을 저지른 사람의 능력이 없는 경우 국가에서 일정부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강원 인제군 남면 남전리 산불현장에 투입된 산림청헬기가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일 오후 강원 인제군 남면 남전리 산불현장에 투입된 산림청헬기가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고성ㆍ강릉ㆍ인제=최종권ㆍ박진호ㆍ편광현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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