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경기 끝난 표 좀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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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끝난 경기의 표를 주세요. 수집용입니다'.

포르투갈-잉글랜드의 8강전 경기가 끝난 1일 겔젠키르헨 월드컵 경기장.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이에 중년 남자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좌우에는 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아들과 딸이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축구 자료나 용품 수집을 하는 사람인가 싶어 말을 걸었다. 겔젠키르헨 인근에 산다는 이 독일인은 "그동안 20경기를 다니며 표를 모았다"고 했다. 하루에 100~150장을 얻었다고 했다. 기자와 얘기하는 동안에도 몇 사람이 별 생각 없이 이날 경기의 입장권을 넘겨줬다.

"수집용이라면 경기당 두세 장 정도면 될 텐데 이렇게 많이 모아 뭘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제야 "사실은 이베이(e-bay.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려서 판다"며 본심을 털어놨다. 장당 30~50유로를 받는데, 조별리그→16강전→8강전으로 올라갈수록 값이 뛴다고 한다. 어림짐작으로 계산해 봐도 꽤 짭짤한 장사다. 100장씩 20경기면 2000장. 30유로씩 받는다고 쳐도 6만 유로(약 7200만 원)다. 준결승.결승전 표까지 합친다면 월드컵 기간 한 달에 1억원을 넘게 번다는 얘기다. 월드컵 심판이 받는 수당(4만 달러.약 3700만 원)의 세 배다. 이 정도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개척한 '돈벌이의 귀재'라고 해야 할까.

겔젠키르헨=글.사진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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