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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획일화'냐, '서열화 해소'냐…자사고 폐지 도마 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자사고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자사고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지역 13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5일 서울시교육청의 운영성과 평가(재지정 평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올해 전국 24개 자사고가 평가 결과에 따른 재지정과 폐지(일반학교 전환) 갈림길에 섰다. 지난 2010년 운영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평가 때문에 강제 폐지되는 자사고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평가에 반발해온 자사고들이 평가를 받기로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서울 자사고교장연합회는 "평가 보고서 제출은 평가를 수용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며 "부당한 평가 지표에 대한 수정 요구를 계속할 것이며, 수용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면 행정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항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청의 평가 결과가 나오는 6월부터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 죽이기" vs "특권 위한 생떼"

 자사고가 반발하는 이유는 올해 평가 기준이 강화되며 상당수 학교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각 교육청이 통과 기준 점수를 60점에서 70점으로 높였고, 전북교육청은 80점으로 높였다. 또 기존 평가에서 자사고가 좋은 점수를 받던 지표는 배점을 낮추고 불리한 지표의 배점을 높이기도 했다. 자사고교장연합회는 "자사고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자사고학부모들도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자사고 폐지는 고교 하향평준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속한 서울교육단체협의회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지정 평가(운영성과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자율형사립고를 규탄하고 '자사고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속한 서울교육단체협의회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지정 평가(운영성과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자율형사립고를 규탄하고 '자사고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정부의 자사고 평가에 대해 "'봐주기식 평가'라는 비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법적으로 자사고는 5년마다 평가를 받고 기준에 미달하면 폐지되는데, 지난 정부에서는 기준 미달 학교도 폐지를 유예해줬기 때문이다. 또 시교육청은 자사고에 대해 "경쟁 위주 교육, 사교육 유발 등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자사고에 비판적인 교원단체 및 시민단체와 같은 지적이다. 전교조 등으로 구성된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4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자사고 평가 거부는 특권을 계속 보장해달라는 생떼"라며 "자사고 폐지가 대통령 공약이었음을 상기하고 서둘러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자사고 폐지 3단계 로드맵 가동

 이처럼 자사고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자사고가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특권을 활용해 고교 서열화와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자사고는 일반고보다 한 달 정도 먼저 학생을 선발해왔고 중학교 성적과 면접 등으로 우수 학생을 뽑았다. 그래서 우수 학생들이 자사고로 먼저 흡수되고 일반고가 황폐해진다는 것이 자사고 반대 측의 주장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3단계 로드맵의 첫 단계가 이러한 선발권을 제약하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2017년 11월 고교체제 개편을 위한 3단계 계획을 내놨다. 1단계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모집 시기 일원화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자사고는 일반고와 동일한 시기에 학생을 선발하게 됐다. 우수 학생 선점을 막으려는 조치다.

 올해부터 추진되는 2단계에서는 본격적으로 폐지 수순에 들어간다. 엄정한 재지정 평가로 기준에 미달한 학교부터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3단계에서는 고교체제를 완전히 개편해 자사고 제도 자체를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념에 따라 정책이 좌우돼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교육제도 변경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무더기 자사고 지정취소로 인한 혼란과 피해가 학생·학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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