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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조폭 영화 이제 그만 만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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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비열하게 인생을 살지 말자는 교훈을 주고 싶었다"는 것이 연출자의 변이지만 이제는 선혈이 낭자한 폭력의 세계가 남기는 후유증을 걱정할 때가 됐다. 1960년대 이래 조폭 영화는 한국 영화 흥행의 미다스 역할을 해오고 있다. 어찌 보면 이들 장르는 한국 사회에서 '법을 지키는 사람은 손해'라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서민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젊은 관객들이 이런 영화에 열광하는 현재의 분위기는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반영한다. 한국 영화계는 90년대 후반 외부 자본의 유입으로 제작 환경이 풍부해졌지만 소재 개발보다 조폭, 섹스,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거친 영화 제작에 몰두해 있다. 중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보여준다는 명분으로 여자 성기를 시종일관 대사 속에 삽입한 '몽정기', 나이 든 부모 등 가족 모두가 외도를 벌이는 막가파식 '바람난 가족', 초등학생 아들이 술집을 경영하는 어머니에게 쌍욕을 해대는 '킬리만자로', 이해 관계가 얽히자 절친한 친구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친구' 등이 흥행가에서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흥행 영화는 그 시대의 반영'이라는 할리우드 흥행 법칙을 원용한다면 이들 영화가 환대받는 것은 분명히 한국 사회의 암울한 일면을 입증하는 단서다. 그러나 역으로 조폭, 천박한 섹스 영화 붐이 우리 사회를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때 회칼을 휘두르는 영화를 양산했던 홍콩과 일본의 영화 산업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시네마 천국'이 회칼을 휘둘러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영화 감독들이여. 진정한 깡패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코폴라 감독의 '대부', 성애 영화를 원한다면 '엠마누엘'을 다시 관람하길 권한다. 제작자들은 예술 창작인이라며 충무로를 들먹거리지 말고, 돈벌이를 위해 유행시킨 회칼의 후유증을 한번쯤 생각해 보길 바란다. 육신을 절단해 핏빛으로 치장되는 조폭 영화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소비자의 권리다.

이경기 영화 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