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위헌 신문법 철폐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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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헌법재판소가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일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핵심적인 것은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보다 더 엄격하게 신문사업자를 규제하는 게 위헌이라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조항은 위헌 청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늬만 위헌 결정이다.

헌재의 다수 의견은 신문관계 두 법에 온존돼 있는 신문에 대한 통제와 언론중재제도의 강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언론인의 윤리적 판단과 실천에 맡겨야 할 공공성과 공정성, 편집의 자유와 독립, 고충처리제도 등이 선언적.추상적.권고적인 것이라 하여 판단을 주저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법에 근거해 인간이 가진 자율성을 폄하하고 헌법상 양심의 자유마저 유린할 소지를 안고 있다.

관변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졸속 입법으로 국회의 심의과정에서부터 문제투성이였던 많은 조항에 대해 헌재는 관할 밖이라는 구차한 변명만 제시했다. 이들 관변 시민단체는 공공자금의 지원을 받는 곳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며 자치(自治)를 행하는 진정한 비정부기구로서의 시민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단체는 관료적 기구의 하나와 다름없다.

암스테르담 대학의 매퀘일 교수는 선진 언론매체가 따라야 할 규범으로 민주주의적 참여 매체의 모습을 상정(想定)하고 있다. 이 규범에 따르면 언론이 중앙집중적 정치규제나 국가 관료의 통제를 받지 않아야 하고, 오로지 수용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교양 있는 시민의 상식인 바, 언론.출판의 자유는 물질적.경제적 자유와 대비해 정신적.정치적 자유로 다른 자유에 우선한다는 것과 개인의 자유인 동시에 제도적 자유임을 헌재도 인정했다. 하지만 헌재의 다수 의견은 참여 민주주의 사회가 진정으로 기대하는 언론법제를 다시 국회의 재량으로 넘겼다. 이제 국회로 다시 넘어간 신문 관계법의 개폐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국회는 역사와 사회 앞에 떳떳하게 입법 재량권을 행사해야 한다.

위헌 판단에서 제외된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사 경영정보의 공개가 언론 탄압의 단초다. 첫째, 신문발전위원회는 혈세로 조달되는 보조금을 '코드'가 맞는 신문에 주어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소수 고급신문의 질을 하향 평준화하고 신문의 다양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더 크다. 취재원을 협박하고 형편없는 문장으로 독자를 어지럽히던 질 낮은 신문조차 이 정부의 관리하에 활개를 치게 될 터이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신문발전기금을 폐지하고 신문발전위원회를 해체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정보공개법상 일반기업의 경우에도 경영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이고 위법.부당한 사업 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기 위한 절박한 필요가 있을 때나 예외적으로 공개한다. 그런데 하물며 공공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가지는 신문 기업에 대해 경영정보를 공개하라니 안 될 말이다. 기사 생산원가를 획일화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민주정치를 위한 정보와 의견 생산에 필요한 재원 조달 방식이 신문사마다 다르고 이를 공개하면 좋은 신문의 생산을 위한 경쟁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관점과 내용과 품질이 각각 다른 신문을 만드는 데 드는 정보를 공개하라니 안 될 말이다.

어느 경우든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역효과만 크고 역사 진보에도 오히려 역행한다. 신문을 통제하고 언론인의 자율 영역을 타율로 규제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말하고 싶은 많은 사람의 목을 조이는 꼴이 된다. 그래서 이 법은 알튀세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폭압적 국가장치다.

국회가 정치력을 회복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언론기관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치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다.

유일상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