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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왜 나랏빚 아닌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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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국가 재무제표상 부채가 급증한 배경엔 공무원·군인연금충당부채가 늘어난 탓이 컸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성격은 공무원 연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부채 항목에는 빠져 있는 자산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급 보장을 분명히 하라”고 언급한 국민연금이 바로 그것이다. 회계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부채로 잡히지 않다 보니 실제보다 국가 부채가 적어 보이는 ‘착시’가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공무원·군인연금처럼 국가 지급 #600조 넘는 금액 자산에만 포함 #“내줄 돈 맞다면 부채로 잡아야”

기획재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2018 회계연도 국가 재무제표상 부채는 1682조7000억원이었다. 그러나 자산에만 잡혀 있는 국민연금 621조8000억원(2017년 기준)을 공무원연금처럼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면 부채 규모는 2304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빼고 남는 순자산은 기존 441조원에서 -180조8000억원으로 뚝 떨어진다. 민간 기업으로 따지면 ‘자본잠식’ 상태로 추가 자본을 수혈받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상태란 의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물론 국가는 기업과 달리 자본잠식(순자산 마이너스)에 빠지더라도 국채 발행으로 자금조달에 이상이 없다면 국가가 ‘폐업’하는 일은 없다. 다만 국가 순자산이 마이너스란 것은 지금과 같은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려면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국채 발행을 늘리게 되면 국가 재정이 나빠질 수 있는 위험성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자산으로만 잡고, ‘나랏빚’으로 분류되는 연금충당부채 계산에서는 제외하는 데에는 회계상으로 이유가 있다. 이는 정부가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운영하는 사회보장정책 성격 때문이다. 국가 권한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소득재분배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나라 곳간이 바닥나면 국가가 이를 보전해야 할 의무도 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도 든다. 이와 달리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은 국가가 고용주라는 인식 아래 향후 지급해야 할 금액을 연금충당부채로 계산하고 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도 인정하는 국제 기준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600조원 규모가 넘는 국민연금을 부채로 잡으면 국가 부채 급증에 따른 부정적 여론을 정부가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제는 국민연금도 결국 미래에는 정부가 지급해야 할 돈이기에 이런 회계 처리가 ‘숨은 빚’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진심으로’ 국민연금을 반드시 국민에게 내줘야 할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부채로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회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김상노 한길회계법인 회계사는 '국가재무제표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은 규모가 큰 만큼 국가 자산 규모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며 “앞으로 재원이 고갈돼 나랏돈(재정) 지출이 예상되지만, 이런 상황을 정반대로 재무제표에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계사는 또 국민연금도 공무원·군인연금처럼 연금충당부채로 인식하거나 우체국예금처럼 자산과 부채를 몽땅 국가 재무제표에서 빼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야 2057년이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일정에 맞춰 정부가 재정 계획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김이배 대한회계학회장은 “연금을 받는 고령층엔 좋겠지만, 후손들이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 회계에서도 본질적인 얘기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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