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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8년간 골치 인삼 절도범, 알고보니 '뚜벅이'라 못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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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오후 9시 30분쯤 충남 논산시 노성면의 인삼밭에 한 남성이 접근했다. 커다란 가방 하나를 멘 남성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인삼밭 안으로 들어갔다.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남성의 행동은 인삼밭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밭 주인 이모(41)씨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영상을 본 이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인삼을 훔치던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인삼을 훔친 남성은 김모(76)씨였다.

2012년부터 94차례 걸쳐 5~6년근 인삼만 훔쳐 #동선노출 우려 도보로… 훔친 인삼 서울서 팔아 #인삼경작자가 설치한 CCTV에 딱걸려 현장검거

논산 등에서 여러 곳의 인삼밭을 운영하는 이씨는 매년 발생하는 인삼 절도사건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2012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인삼도둑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피해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해도 진척이 더뎠다. 절도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의 방범CCTV로 인삼밭 주변을 오갔던 차량을 모두 확인했지만, 관련이 없었다.

결국 이씨는 ‘스스로 해결하자’는 생각에 150만원을 들여 인삼밭에 CCTV를 설치했다. 야간에도 밭에 침입하는 절도범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의 장비였다. 그는 “걸리기만 해봐라”라는 심정으로 기다렸다고 한다. 결국 이씨가 설치한 CCTV가 고질적인 사건을 해결했다.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2012년부터 지난달까지 충남 논산·공주·부여와 전북 익산·고창 등에서는 인삼 절도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8년간 무려 94건이 발생했다. 논산지역에서만 발생한 절도사건도 50여 건이나 됐다. 이 때문에 인삼 경작자들은 “우리 밭도 언젠가는 털리겠구나”라며 불안에 떨었다.

대부분 수법이 비슷했다. 인적이 뜸한 야간에 인삼밭에 들어가 출하가 임박한 양질의 5~6년근 인삼만을 골라 훔쳐갔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 인삼밭 주변에서는 수상한 차량의 이동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였다.

김씨를 검거한 경찰은 그제야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절도전과 9범인 김씨는 차량을 이용하면 자신의 신분과 동선이 노출된다는 점을 잘 알았다. 이 때문에 먼 거리도 대부분 걸어서 이동했다.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논산과 공주, 부여 등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움직일 때는 반드시 ‘도보’가 원칙이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양의 인삼을 훔치지도 못했다. 가방이나 마대자루에 담아 메고 다닐 만큼만 인삼을 훔쳤다. 범행도구도 가방과 인삼을 캘 때 필요한 괭이 하나, 장갑이 전부였다.

김씨는 이런 수법으로 훔친 인삼을 서울로 가져간 뒤 경동시장과 구로구 등의 재래시장 주변에서 팔았다. 좌판을 펴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좌판은 신용카드가 아니라 현금만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수확한 지 2~3일에 불과한 5~6년근에다 가격도 저렴하다 보니 내놓는 즉시 팔려나갔다.

경찰은 김씨를 검거하면서 충남과 전북 일원에서 발생했던 90여 건의 인삼 절도사건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김씨는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 범행 장소와 규모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은 절도 혐의로 김씨를 구속하고 그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삼 경작자 이씨와 CCTV 보안업체 대표 등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충남과 전북 일원을 돌며 8년간 94차례에 걸쳐 5~6년근 인삼을 훔친 절도범이 검거됐다. 절도범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논산경찰서]

경찰 관계자는 “지난 8년간 절도범을 검거하기 위해 인삼 경작자들과 협업한 결과”라며 “앞으로 인삼 등 농산물 절도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민간과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논산=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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