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자식' 인보사의 배신···은퇴선언 이웅열 발목 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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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열 회장이 5일 ‘인보사 성인식 ’행사에서 사업보고서를 받았던 날짜를 뜻하는 ‘981103’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5일 ‘인보사 성인식 ’행사에서 사업보고서를 받았던 날짜를 뜻하는 ‘981103’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코오롱]

"인생의 3분의 1을 인보사 개발에 투자했다. 인보사는 내 4번째 자식이다."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이 2017년 충주공장을 방문해 한 말이다. 이처럼 이 전 회장이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코오롱생명과학의 퇴행성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가 판매 중지됐다.

지난해 ‘깜짝 은퇴선언’으로 외형상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뗀 이 회장이 인보사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룹 입장에서도 이 회장의 퇴임 이후 ‘포스트 이웅열’ 체제를 갖추고 미래 먹거리 가업의 기틀을 다지는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은퇴를 선언하며 코오롱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전 회장 재임 시절 역작으로 평가받는 제품이 인보사다. 1996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 전 회장은 부친 고(故) 이동찬 명예회장으로부터 그룹을 이어받으며 미래 먹거리산업으로 ‘바이오’를 꼽았다. 98년 그룹 내 참모진들의 만류에도 이 전 회장은 인보사 투자와 개발을 결정했다. 19년 동안 이 전 회장은 인보사 개발에 1100억원을 쏟아부으며 열정을 과시했다.

이 전 회장은 퇴임 선언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보사 3상(실험)이 진행 중이고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도 상장에 성공했다. 내가 27년간 투자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주주이자 투자 최종 결정권자라는 점에서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을 떠났어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회장은 코오롱생명과학 지분 14.40%, 코오롱 티슈진 지분 17.83%를 갖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최대주주는 ㈜코오롱이며, 이 회장은 ㈜코오롱 주식의 49.74%를 가진 최대 주주다.

인보사는 이 전 회장의 '뚝심 경영' 대표 사례로도 꼽혔다. 2017년 29번째로 국산 신약 허가를 받을 당시에는 근본적 치료제로 인정을 받지 못해 ‘반쪽 허가’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초에는 미국 임상3상 일정이 미뤄지며 일본과 계약한 기술수출계약이 파기되기도 했다. 곡절 속에서도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해 일본의 다른 기업과 기술수출계약을 맺었다. 인보사에 대한 미국 임상3상도 지난해 하반기 시작됐다. 국내 시술 건수도 3403건에 이르면서 코오롱그룹 바이오산업을 짊어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 회장이 언급했던 이른바 '제2의 창업'에도 인보사 판매중지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전 회장은 퇴임 깜짝 발표 당시 "이제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까짓거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떠냐. 이젠 망할 권리도 생겼는데”라고 그룹 경영의 짐을 내려놓는 홀가분한 마음도 표현했다.

코오롱 관계자는 “(인보사 판매 중지 이후) 이 전 회장으로부터 연락도 없었고,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이 전 회장과 인보사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식품의약안전처는 지난달 31일 인보사에 대한 판매중지를 코오롱생명과학 측에 요청했다. 미국 임상 승인 중 인보사의 주성분 중 1개 성분이 한국에서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와 달라서다. 현재 미국 임상3상은 중단된 상태다. 국내에서 사용된 세포에 대한 검사결과는 4월 15일쯤 나올 예정이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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