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의 "황금알 낳는 거위"|우리기업은 지금<3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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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꿈의 신천지」「자본시장의 꽃」-.
지난85년부터 증시 호황과 함께 증권회사가 돈방석에 올라앉으면서 금융업의 총아로 등장하자 증권산업은 성장산업으로 온갖 미 사려구가 따라 다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증권시장은 소수가 참여하는 공인된 투기장에 불과했으나 이제 주식투자를 안 하면 불출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취급을 받을 정도로 주식대중화시대가 활짝 열렸고 이에 발맞춰 증권사들도 떼돈을 밸게됐다.
56년 우리나라 증시가 개장될 때 12개 사에 불과하던 상장회사 수가 6월말현재 5백33개에 상장자본금은 무려 14조1천14억원에 달하고 있다. 또 지난80년만 해도 상장주식의 시가 총액이 GNP의 6·9%에 머물던 것이 최근에는 65조원으로 57%수준에 달하고있다. 이에 따라 우리 자본시장규모가 세계11위 수준으로 도약했다.

<세계 11위로 도약>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 증권의「다부치·세스야」(전연절야) 회장이 최근『한국은10년 후 세계 4대 자본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 같은 우리증시의 빠른 성장속도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 생각된다.
3∼4년 전까지 만해도 증시를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비율이 전체 조달 액의 20%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조달규모 12조원으로 은행의 여신을 7대3의 비율로 앞지른 것만 봐도 자본시장의 성장과 함께 증권사들이 금융기관으로서 얼마나 단단하게 자리를 굳혔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최근 5년 동안 제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36%에 달했는데 증권사의 영업실적이 그4∼5배인 연평균 1백57%의 성장률을 보였다는 것이 증권업의 호경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특히 88회계 연도(88·4∼89·3)중 국내 25개 증권사의 영업수익은 1조9천6백51억원으로 전기의 1조1천21억원 보다 78·3% 증가했으며 세전 당기순이익은 6천9백59억7천만원으로 전기보다 1백79·4%나 늘어났다. 이들 증권사가 지난 한해동안 증권투자로 벌어들인 돈만도 5천9백72억8천만원(전기비1백46·4%증가)에 이르고 약정고는 1백43조2천4백78억원에 이르렀다.
증권구락부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증권업의 역사는 39년에 불과하다. 증권업의 산 파격으로 꼽히는 고 송대순씨를 중심으로 한 증권구락부가 49년11월에 탄생시킨 대한증권이 국내 증권사로는 제1호였다.
짧은 역사 속에 58년의 1·6 국채파동, 62년5월의 증권파동 등 크고 작은 파란을 겪으며 증권업계는 숱한 흥망 사를 연출했다. 한때 최고60개의 증권회사가 난립해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한해동안 무려 14개회사가 문을 닫은 일도 있었다.
증권업계의 대부 격인 강성진 증권업협회고문(전 삼보증권사장)은『50년대 후반 복덕방 식의 채권회사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증권사들이 오늘날 자본금 1천8백억원 이상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금?지감이라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라고 증권업계의 성장사를 회고했다.
68년 증귄거래 법 개정에 이어 자본시장 육성법 개정, 72년 기업공개 촉진법 제정 등으로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힌 증권계는 70년대 중반 증권사의 대형화 붐을 타고 진출한 대기업그룹의 증권회사들을 주축으로 대우·동서 등25개 증권사가 할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자(1천8백28억5천만원) 대신(1천8백8억원) 럭키(1천8백억원)등은 자본금이 1천8백억원을 넘어섰으며 쌍용·동서·현대등도 자본금 1천억원을 돌파했다.
현재 국내 최대증권사는 지난83년 삼보증권과 동양증권의 합병으로 대어난 대자계열의 대우증권 (사장 김창희).
본점 영업부를 포함, 지점수가 52개, 해외사무소 4개에 임직원이 모두 2천6백40명인 이 회사는 88회계 연도의 당기순이익이 1천76억9건7백만원에 달했고 약정고규모가 전체증권사약정고의 15%선을 차지하고있다.

<줄이어 해외지점>
그 뒤를 동서(사장 홍인기)럭키 (사장 허남목) 대신(사장 양재봉) 등이 뒤따르며 순위다툼을 벌이고 있으나 약정고 점유율이 각각 7∼8%수준으로 비슷비슷해 결판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증권사의 증자와 점포설치가 자율화된 데다 재벌그룹마다 계열증권사를 주력기업으로 키울 채비를 하고있어 앞으로 이러한 증권사 판도에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럭키증권이 올 들어 점포수를 몇 개로 늘려 대우를 앞지르고 현대도 점포를 31개로 늘리고 대규모 증자를 실시, 재벌그룹 증권사들간의 힘 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국내증권사들이 안고있는 최대 과제는 90년대 들어 본격화될 자본시장의 국제화추세에 어떻게 대응해나 가느냐는 것.
최근 대우·대신 등 9개 증권사가 뉴욕·동경·런던 등에 30개 해외사무소를 개설, 국제적인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본격적인 대형화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국제화에 대비한 준비작업으로 볼 수 있다.
증권업계는 지난 한해동안 대폭적인 증자를 실시, 3월말현재 25개 증권사의 자본금은 1조5천5백79억원으로 1년째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증권사당 평균자본금도 6백23억원이 됐다. 증권사 점포수 만해도 지난해말 3백38개이던 것이 5월말현재 5백5개로 늘어났다.

<투자자보호 미흡>
물론 올 들어 증시침체로 증권가에 찬바람이 불고 지난 5월에는 증권사들이 4년 만에 적자를 내자『좋은 시절 다간 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증권사들이 투자자문 업이나 기업합병업무·부동산임대·리스업 등 경영다각화에 눈을 돌려 증시 침체시기에 대비하고 있는 것도 그 같은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길게 보면 증권업계의 전망은 무척 밝은 편이다. 수수료의 자율와, 증자 및 점포신설의 자율화 등으로 본격적인 경쟁시대에 들어서고 고정비용부담의 증가로 과거와 같은 초고속 성장은 할 수 없다하더라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자본자유화를 등에 업고 안정적인 성장은 가능하다고 증권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서강대 최운열교수(경영학)는 우리 증권업계의 과제에 대해『국제화를 앞두고 인재양성과 함께 최고 경영자들의 새로운 금융환경에 걸 맞는 경영스타일의 구축이 가장 시급한 일』 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일증권의 유인채 상무는 ▲대외개방에 따른 경쟁력강화 ▲신상품의 개발 등을 통한 증권투자 수요의 확대 ▲투자자 보호방안의 마련 ▲정부증시 정책의 일관성 유지 등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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