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56세 자연인 김의겸과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흔히 50대 중반을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시기라고 한다.

대개 개인 커리어의 정점이지만 곧바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대기업 근로자 기준으로 50대 때는월평균 657만원을 받지만 60대가 되면 420만원으로 줄어든다. (통계청, 2017년 기준) 직장에서 은퇴한 뒤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 소득 없이버텨야 하는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에 빠지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자녀 뒷바라지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연로한 부모를 모시는 부담도 만만찮다. 그래서 50대는 외롭다. 20대 후반과 50대 중반, 80대 후반에 외로움이 절정에 이른다는 캘리포니아 대학(샌디에이고) 의대의 연구결과도 있다.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청와대사진기자단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청와대사진기자단

56세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올인 투자’도 이런 라이프 사이클의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사회생활 30년간 무주택자였다는 김 대변인은 작년에 자그만치 16억원의 부채를 지고 25억7000만 원짜리 부동산을 질렀다. 전재산을 털어넣었다. 불투명한 인생의 미래에 대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당장 이자 부담이 만만찮지만 재개발 예정지역이니 몇년만 버티면 노후대비용으로 이만한 재테크가 없다고 봤을거다.

그는 28일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팔순 노모가 혼자서 생활하고 계신다. 내가 장남이다. 전세를 살면서 어머님을 모시기가 쉽지 않아서 어머님을 모실 수 있는 넓은 아파트가 필요했다. 상가는 제가 청와대를 나가면, 별달리 수익이 없기 때문에 아파트 상가 임대료를 받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때마침 중학교 교사로 30년 가까이 일했다는 아내도 명예퇴직해서 일시금을 받았고, 그 자신도 한겨레신문을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이 있었다. 한창 부동산이 뜰 시기였으니 서울에서도 알짜배기라는 흑석동 재개발 건물은 50대 중반의 김 대변인에게 충분히 해볼만한 베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자연인 김의겸 얘기다. 공직자 김의겸, 하물며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관련기사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옥죄다시피 할 정도로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부동산을 지대 추구 행위로 보는 진보진영 전통의 시각에 더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의 차별화를 꾀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인상, 투기과열지구 지정, 부동산 공급확대 등 할 수 있는 수단은 죄다 동원했다고 할 정도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아파트값 폭등으로 치명상을 입었다는 트라우마도 크다.

27일 전자관보에 공개된 김의겸 대변인의 재산신고 내역.

27일 전자관보에 공개된 김의겸 대변인의 재산신고 내역.

그런만큼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이 현직에 있으면서 거액을 빌려 재개발 지역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건 충격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과거 선비들의 청빈(淸貧)까지 거론하는 건 오버일지 몰라도 적어도 청와대 대변인쯤되면 자기 정부의 정책방향과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시중에선 “청와대 대변인도 부동산 투기를 하는 판에 어떻게 투기를 막겠다는 거냐”는 냉소가 퍼지고 있다. 그런데도 김 대변인은 당당한 자세다.

“결혼 이후 30년 가까이 집 없이 전세를 살았다. 지난해 2월부터 청와대 관사에서 살고 있다. 청와대는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 자리다. 나가면 집도 절도 없는 상태다. 그래서 집을 사자고 계획을 세웠다.”

자신의 해명에 대해선 “몇 가지 ‘팩트’를 말씀드리겠다”고 사실로 못 박았다.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서 얻을 수 있던 ‘특별한 정보’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흑석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가까운 친척이 살 매물을 제안했다”고, 투기가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선 “이미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시세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경우가 투기인데 그 둘 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이런 건 ‘자연인 김의겸’이면 몰라도 ‘대변인 김의겸’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염치(廉恥)라 일컫는다. 68년생으로 50대 초반으로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김의겸 건이 기분을 씁쓸하게 하는 건, 청와대 대변인쯤 한 사람도 결국 자기 개인사로 돌아오면 상가 임대 소득으로 노년을 설계하게 된다는 거다. 뭐라고 할 건 아닌데, 기분은 더럽다. 그래도 여생에 좀 도움을 받으려고 상가 좀 산 거다,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청와대 대변인 설명을 보면서… 기분이 더러워졌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