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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마후라」대방동33년 "아듀"|30일 공군본부 이전 경과보고 회 가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육군본부에 이어 서울대방동 공군본부가 대전근교로 옮겨간다. 공군본부는 이전에 앞서 지난달 30일「6·25참전용사, 이웃주민 초청 공군본부 이전 경과보고 회」를 가졌다. 역대 참모총장, 참전 용사, 인근 대방동·신길동주민 5백 여명이 참석해 공군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감회를 나누었으며 내일의 발전을 기약했다.
공군 본부가 대방동에 터를 잡기는 56년6월.
49년10월1일 육군항공사령부에서 독립, 회현동의 임시청사에서 출범한 공군은 출범직후 6·25를 맞아 대구 등지로 이전하는 우여곡절 끝에 작년 대방동 현 부지에 정착했다.
연습기 20대로 출발한 공군은 6·25를 거치며 전력이 증강돼 종전 무렵에는 항공기1백17대, 병력1만1천 여명으로 불어났다. 대방동에 자리잡고 33년만인 이제는 4만 여명의 정예병력을 갖춘 대군으로 성장했다.
56년 부대설립당시만 해도 논·밭뿐이었던 대방동부지주변은 이제는 서울에서 가장 교통체증이심한 곳으로 꼽힐 만큼 중심지역으로 바뀌었다.
『밤에 교실에서 공부하면 주변이 온통 논밭이어서 불빛이 안보였어요. 농토 길을 따라 현재의 서울대자리인 골프장까지 구보를 하곤 했습니다. 60년대 사관학교를 나온 정모씨의 회고.
조선시대에「가장자리」를 뜻하는「번댕이」라는 마을이 있어 번대방리로 불려지던 이곳은 경기도 시흥군에 소속돼 있다가 36년 서울로 편입된 뒤 관할 구도 영등포구에서 관악구로, 다시 동작구로 3차례 바뀌었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우물을 파 식수로 쓰고 목욕탕은 폐결핵환자들의 요양소로 쓰이기도 했으며 인근 성남중·고교 운동장의 용마우물은 용이 우물에서 나왔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공군본부 뒷산의 이름도 이용이 하늘로 올라 갔다고 해서 용마산이다.
지금은 보라매공원이 자리잡은 공군사관학교는 해방 전에는 늪지대여서 메기·가물치·붕어 등이 많아 주민들의 고기잡이가 끊이지 않았으며 58년 경남 진해에서 사관학교가 올라온 뒤 매립돼 운동장이 조성됐었다.
인근 대방동 산99 청련암은 신라시대에 원효스님이 창건했다는 고찰로 주변마을이「높은 절」이라는 뜻의 고사리로 불려지기도 했는데 6·25때 공산군에 의해 건물일부가 부서졌다.
공군사관학교(10만여평)·공군본부(7만8천여평)가 자리잡은 뒤 삼엄한 경비덕분에 주변동네는「도둑 없는 마을」이 되기도 했으나 재산권행사에 제약을 받는 등 불편도 많아 주민들은 공군본부이전이『시원섭섭하다』는 평. 사관학교 주변 2만여평이 지금까지『운동장이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로 도시계획에 묶여 민원이 잇따랐고 군부대로 인해 지역발전이 상대적으로 늦었다는 주장도 있다.
공군본부가 옮겨가면 일대는 공원과 아파트단지 등으로 재개발될 예정. 특히 이곳은 서울시내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녹지공간으로 계획적인 설계가 가능해 서울시는 세심한 개발계획을 짜고 있다. 이점에서 오히려 부대가 있었던 것이 장기적으로는 도시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역설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민 백창기씨(59·세탁 업)는『19년째 이곳에 살며 정이 들기도 했는데 막상 옮긴다니 섭섭하다』며『그러나 이번 이전이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 것 같아 기대에 부풀어있다』고 말했다.
이전계획이 발표된 뒤 일대의 땅값도 오름세. 최근 서울시의 감정가격이 대로변 상업지구의 경우1년전 보다 25%가 오른 평당 2백50만원이 됐고 실 거래 가격은 이보다 높은3백마원대를 웃돌고 있다. 그러나 값이 더 오르리란 기대로 매물이 드물다.<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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