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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 노조의「지는 용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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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시중은행의 임금타결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감이다.
금융노련 및 시은노조가 당초 노사가 합의한 26·2%를 끝내 포기하고 9·9%인상에 최종합의 한 사실은 그들 스스로는 졌다고 자책할 진 몰라도 그들을 지켜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조의 질줄 아는 참된 용기에 갈채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은노조측은 이번 정부와의 싸움에서 논리나 원칙, 그 어느 면에서나 정부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다. 어디까지나 민간기업인 은행의 임금협상에, 그것도 다 끝난 협상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입, 무효를 선언한 것은 그 자체가 이미 합리적인 논거를 잃고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 금융계는 물론 노동계전체가 정부방침에 반발했으며 언론도 정부의 태도에 박수를 보낼 수 없었다.
그 같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금융노조가 과감히 양보를 한 것이다. 노조측은 파국적 상황까지 가서 정부의 직권중재를 받는 것은 오히려 자율적인 노사협상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며 실제내용이야 어찌됐든 간에 노사자율협상의 모양까지 살리는 대국적인 자세를 보였다.
시은노조는 특히 정부와 팽팽히 맞서있는 상황에서 의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도 일부 재야운동권으로부터의「지원사격」제의를 정중히 거절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행원들이 정부보다도 어른스런 모습을 보인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이번 협상을 금융노조의 승리라고 평가하는데 누구나 인색치 않을 것이다.
이번 협상을 이렇게 이끈 것은 노조원뿐만이 아니다. 전 은행의 부장·차장·과장 등 간부직원들도 이번 협상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자신들의 임금인상 분을 하위직원에게 양보한다는 결의를 했다.
이 같은 행동이 1백% 자율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해도 그 같은 뜻이 이번 협상의 성공에 큰 힘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조원들은 선배직원들의 이 같은 뜻이 은행원들의 양식에서 나왔다는 자부심에서 자신들은 이들의 양보 분을 받지 않겠다고 들 한다고 들린다.
양보와 타협이 가장 큰 협상의 기술인 것과 정부보다 더 어른스러운 은행원을 볼 수 있었다는 게 이번 시은임금협상의 최대수확이 아니었나 싶다. <심상복><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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