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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피스 공화국, 흐르는 강에도 권리가 있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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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발틱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 가려져 있던 문화적 진가가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 후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는, 아직 우리나라엔 낯선 곳이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오랜 역사의 문화적 영향력을 지녀온 나라다.

14-15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할 만큼 국력이 막강했으나 주변국들의 계속된 침략 속 18세기 러시아 제국에 합병당했다. 20세기엔 나치 독일에 의해 20만 명 이상이 학살당하고 소비에트 점령 시절 인구의 3분의 1이 시베리아로 끌려갔던 한(恨)이 남아있다.

그런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일까. 수도 빌뉴스는 올드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움 가득하지만 밝음보다는 엄숙미와 비장미가 가득하다. 가려지고 숨겨진 보석. 상처를 극복하며 더욱 빛나리라.

삶의 향기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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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돌길을 따라 걷다보면 곧 마주치는 작은 빌넬레강은 오랫동안 강 양쪽을 가르는 사회적 분단의 경계였다. 강 건너 게토구역은 가난과 절망의 폐허. 그러나 마침내 1997년 4월 1일 만우절, 그곳의 예술가들은 0.6㎢ 영토에 국기와 국가, 통화, 11명 규모의 군대를 갖추고 현 우주피스 대통령 릴레이키스와 동료 체파이티스가 한 술집 탁자위에서 3시간 만에 작성한 헌법을 공포하여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 편’을 뜻하는 우주피스(Užupis) 공화국을 유쾌하게 건국한다. 41조로 구성된 공화국 헌법은 현재 35개 언어로 금속판에 새겨져 있는데 우리말본도 32번째로 놓여있다. 기발하며 공감되는 헌법 전문을 소개한다.

1.모든 사람은 빌넬레 강변에서 살 권리를 가지며 빌넬레 강은 모든 사람 곁에서 흐를 권리를 가진다. 2.모든 사람은 겨울철 온수와 난방과 기와 지붕을 가질 권리가 있다. 3.모든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나 이것이 의무는 아니다. 4.모든 사람은 실수할 권리를 가진다. 5.모든 사람은 유일한 존재가 될 권리를 가진다. 6.모든 사람은 사랑할 권리를 가진다. 7.모든 사람은 사랑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나 이것이 필수는 아니다. 8.모든 사람은 인기가 없어도 되고 다른 사람이 몰라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9.모든 사람은 게으르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10.모든 사람은 고양이를 사랑하고 돌볼 권리를 가진다. 11.모든 사람은 개가 죽을 때까지 돌볼 권리를 가진다. 12.개는 개로서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13.고양이는 자기 주인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의무는 없지만 주인이 어려운 순간에는 꼭 도와 주어야 한다. 14.모든 사람은 가끔 자신의 의무에 대해 알지 못해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15.모든 사람은 의심할 권리가 있으나 이것이 의무는 아니다. 16.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를 가진다. 17.모든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18.모든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될 권리를 가진다. 19.모든 사람은 믿음의 자유를 가진다. 20.모든 사람은 강제적으로 명령할 권리가 없다. 21.모든 사람은 자신의 보잘 것 없음과 위대함을 깨달을 권리를 가진다. 22.아무도 영원히 살 것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23.모든 사람은 이해할 권리를 가진다. 24.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가진다. 25.모든 사람은 다양한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6.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축하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27.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꼭 기억해야 한다. 28.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나눌 수 있다. 29.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30.모든 사람은 형제·자매 및 부모를 가질 권리를 가진다. 31.모든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다. 32.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진다. 33.모든 사람은 울 권리를 가진다. 34.모든 사람은 이해받지 못할 권리를 가진다. 35.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할 권리가 없다. 36.모든 사람은 사생활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37.모든 사람은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38.모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39.이기려고 하지 마라. 40.자신을 방어하지 마라. 41.포기하지 마라!

이 유쾌한 자유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곧 다가오는 우주피스 건국기념절 소식과 함께 다음번 칼럼에서 계속 이어진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