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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미쓰비시 첫 압류···일본 "극히 심각하다"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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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법원이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전범 기업으로 꼽히는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국내 특허권과 상표권에 대한 압류결정을 내렸다. 국내 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특허권·상표권 자산을 압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결정으로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냉랭해진 한·일 간 외교적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측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라며, 한국 제품 불매운동과 송금중단 등 대항 조치까지 거론하는 와중이어서 양국 간 경제 분야로 파장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제동원 4명 8억원 배상용 #법원, 국내 특허·상표권 첫 압류 #신일철주금 이어 두 번째 압류 #한·일 외교 갈등 더 깊어질 듯

25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에 따르면 대전지법은 지난 22일 양금덕(89)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제기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특허권 6건과 상표권 2건에 대한 압류명령 신청을 받아들였다. 양 할머니 등 원고 4명에 대한 특허권·상표권의 총 채권액은 8억400만원이다. 법원의 압류 결정에 따라 미쓰비시중공업은 해당 특허권·상표권에 대한 양도나 권리이전 권한을 잃게 됐다. 이번에 압류된 자산에는 국내 화력발전소 내 주요 부품에 대한 특허권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은 신일철주금의 주식을 압류한 지난 1월 9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의 결정에 이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당시 포항지원은 지난해 10월 31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신일철주금의 주식 8만1075주(4억여원)를 압류했다. 신일철주금은 포스코와 합작한 PNR 주식에 대한 매매·양도 등 처분 권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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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원의 판결과 관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25일 “원고 측에 의한 압류 움직임이 진행되는 것은 극히 심각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스가 장관은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적절히 대응해 나가고 싶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시민모임 측은 이번 압류 결정에 따라 환가(換價)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해당 특허권·상표권에 대한 공매나 매각 등을 통해 손해배상액을 받아내는 것이다. 법원이 이날 압류한 특허권 등 자산은 지난해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손해배상청구액이다.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긴 양 할머니 등 5명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미쓰비시 측이 배상에 응하지 않자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 미쓰비시 측의 자산에 대한 압류명령을 신청했다.

시민모임 “강제징용 배상 유사 소송 최대 1000건 가능성”

법원은 특허청이 대전시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내려보냈다.

해당 소송을 주도해온 김정희 변호사는 “당초 승소 판결을 받은 원고는 양 할머니 등 5명이었으나 원고 김중곤 할아버지가 지난 1월 25일 사망하면서 4명만 압류명령을 신청했다”며 “김 할아버지에 대한 상속·승계 절차를 마치는 대로 압류신청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근로정신대와 관련한 소송의 승소 여부를 떠나 미쓰비시 측에는 치명적인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쓰비시는 그동안 소송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미쓰비시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변호인단은 국내에서 환수 가능한 자산을 추적해 왔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번 사례와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하자 행정안전부 등에 문의 전화가 쇄도한 바 있다. “우리 할아버지도 피해자인데 지금 소송을 걸면 이길 수 있느냐”와 같은 문의가 대부분이다.

시민모임 측은 유사한 소송에 최대 1000여 명까지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전남의 경우 지난 19일부터 근로정신대와 관련한 집단소송 참여자를 신청받은 결과 관련 문의만 300여 건에 달했다. 이 중 정식 접수를 시작한 25일 하루에만 증빙서류 확인을 통한 공식접수 42건을 비롯해 방문·전화 상담이 190여 건에 달했다.

시민모임 측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손해배상 승소 판결을 기준으로 청구 시효를 고려해 일본 341개 전범 기업을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시민모임 측 이상갑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2013년 4월 소송을 시작한 후 가장 실효성 있는 판결”이라며 “현재 추세라면 전국적으로 퍼질 경우 수천억원대 소송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김상진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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