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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열발전소 없애달라” 청원 외면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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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유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

2017년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로 인한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지난 20일 발표됐다. 학자·시민단체 등이 2년 전부터 의문을 제기한 게 사실로 판명된 셈이다.

그해 11월 15일 수능 연기사태까지 빚은 포항 지진 후, 일찌감치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불안하다”는 시민들의 글이 여럿 올라왔다. 포항 북구에 산다는 20대 여성은 “지열발전소를 없애달라”면서 “이미 지진으로 지반이 약해져 있는데 지열발전을 위해 강한 압력으로 물을 땅으로 넣는다는 건 다음 지진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라고 적었다. “포항 근처에 월성원전이 있어 불안하다”는 글도 있다. 경주·포항지진을 모두 겪어봤다는 이는 “(공식)사망자가 없다고, 재난 알림 문자가 빨리 왔다고 ‘대비했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비슷한 청원이 지난해 2월에도 올라왔지만, 청원인 숫자가 적어 정부의 공식답변은 없었다. 시민 입장에선 ‘담벼락’에 대고 외치는 격이었다.

해외 사례만 봐도 ‘경고음’은 충분했다. 2008년 스위스 바젤에서 발생한 규모 3.4 지진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열발전이 지목된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바젤에선 물 주입 직후 지진이 발생해 사업이 중단됐다. 독일 란다우에서도 소규모 지진이 50여 번 발생해 폐쇄 운동이 벌어졌다.

사실 정부에는 그해 4월 15일 사태를 예방할 ‘기회’가 있었다. 산업부는 2017년 4월 15일 물 주입 이후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한 이틀 뒤인 17일, 컨소시엄(넥스지오·지질자원연구원·건설기술연구원 등)이 주입 중단·배수 조치 등을 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컨소시엄이 지진을 ‘관리’할 수 있다고 무리한 판단을 했는데 정부가 그 판단 그대로 따른 것이다. 결국 넥스지오가 물 주입을 재개했다. 만일 4월 지진 직후, 정부가 의심을 갖고 선제 조처를 했더라면 그해 11월 규모 5.4의 지진은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산업부는 자신들이 내린 결정이 아니라 주장한다. 그러나 ‘무위(아무것도 하지 않음)’도 일종의 결정이다. 손 놓은 정부에 2년간 시민은 불안에 떨었다. “안전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무색하다. 정부·국회는 부실했던 사업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등 안전대책 강화에 나서야 한다. “어느 정부부터 한 거냐”는 정치 공방은 몰염치의 극치다. 개발을 위해 위험을 무시한 전 정권이나 무대책으로 일관한 현 정권 모두 책임져야 맞다.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