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렬 기자] 성조숙증과 저신장 등을 판단하려면 우선 아이의 성장 수준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게 ‘뼈 나이(골 연령·Bone age)’다. 뼈의 모양과 뼈 사이 연골 숫자와 크기, 간격 등을 보면 아이가 또래와 비슷한 속도로 자라는지 판단할 수 있다. 예컨대 나이가 10살인데 뼈 나이가 8살이면 성장 여력이 있다고 해석한다. 초등학생은 흔히 손의 X선 촬영 영상을 활용해 뼈 나이를 판독하는데, 결과에 따라 생활습관 개선이나 호르몬 치료 등으로 올바른 성장을 도울 수 있다.
기존에는 뼈 나이를 확인하기 위해 시쳇말로 ‘노가다’를 해야 했다. 대상자의 손 X선 사진을 보며 연령별로 정리된 표준 X선 사진과 대조해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야 했다. 진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의사의 경험과 판독 역량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일주일마다 수백 명 이상의 환자가 성장 클리닉을 찾는 현실에서, 의사의 과도한 업무 부담이 자칫 잘못된 판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대 들어 의료기기 업체인 ‘뷰노’와 손잡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의사가 판독했던 2만여 장의 X선 사진을 AI에 학습시켜 사진만으로 뼈 나이를 자동 측정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이 소프트웨어가 지난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의료기기로는 첫 허가를 낸 ‘뷰노메드 본에이지’다.
AI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1월 24일, 뼈 나이 진단 과정을 참관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신관 영상의학과를 찾았다. 초기부터 AI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한 이진성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11세 남자 아이의 뼈 X선 사진을 두고 과거 진단 방식과 AI를 이용한 진단 방식을 직접 비교해줬다.
반면 AI는 이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환자 X선 사진을 띄우고 B(뼈를 가리키는 영어 Bone의 앞 글자)를 누르자 5초쯤 지나 AI가 판독한 영상이 다른 모니터에 떠올랐다. AI가 뼈 사진을 인식하고 확률이 높은 순서대로 금(1순위), 은(2순위), 동(3순위) 색을 입혀 화면을 구분해줬다. 이 교수는 AI가 제시한 사진과 대상자의 X선 사진을 신중히 검토한 후 진단을 완료했다. 소요 시간은 30초 안팎에 불과했다. 이 교수는 “연구 결과 AI가 제시한 세 개의 사진 중 실제 환자 뼈 나이가 포함될 확률은 95% 정도로 높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의 AI는 초기 모델로 지금은 속도와 디자인이 개선됐고 결과물을 출력할 수도 있다 김현준 뷰노 이사(CSO)는 “한국인의 데이터만을 학습시켜 결과의 정확도가 높다”며 “폐암 등 다른 질환으로 AI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