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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사업가 만나라" 숨진 이희진母 문자, 누굴 노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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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OOO사업가 만나보라"는 숨진 엄마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3·수감)씨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가 이씨 일가(一家)를 노린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범행 후 이씨 어머니 행세를 하던 피의자 김모(34)씨가 이달 초 이씨 동생(31)을 한 차례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추가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안양 동안경찰서 외에 지방청 광역수사대 2개 팀까지 투입한 상태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범행 후에도 치밀하게 움직였다. 현장을 치우고 시신을 유기한 것 외에 숨진 이씨 어머니(58) 행세까지 했다. 이씨 어머니 스마트폰으로 이씨 동생에게 일상적인 카카오톡을 보내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면서 “OOO 사업가를 만나보라”는 취지의 권유도 했다. 김씨는 요트 관련 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달 초 한 식당에서 이씨 동생을 만나는 데 성공한다.

'청담동 주식부자'로 불리는 이희진 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지난 2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청담동 주식부자'로 불리는 이희진 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지난 2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씨 부모 살인 후 추가범행 계획했나

경찰은 이를 추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씨 측은 “사죄하려 만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찰은 시신유기까지 한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모에 이어 동생까지 노린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씨가 만남을 앞두고 추가 ‘인력’을 고용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하던 중 범행 전후 시점 심부름센터 쪽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시신 뒷수습을 맡기려 접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숨진 이씨 어머니 행세는 결정적으로 김씨를 용의 선상에 올린 핵심 단서가 됐다. 이씨 동생의 실종신고(지난 16일)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장롱에 유기된 어머니 시신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숨진 어머니가 만나라고 한 ‘OOO 사업가’ 김씨는 실종 신고 하루 만에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긴급체포됐다. 경찰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이씨 동생을 참고인으로 불러 당시 대화 내용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지난달 25일 이희진의 동생이 20억원에 판매한 흰색 부가티 베이런 그랜드 스포츠 차량. 이씨 동생은 5억원을 부모에게 건넸고, 김씨는 이씨 부모를 살해한 뒤 이돈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남궁민 기자

지난달 25일 이희진의 동생이 20억원에 판매한 흰색 부가티 베이런 그랜드 스포츠 차량. 이씨 동생은 5억원을 부모에게 건넸고, 김씨는 이씨 부모를 살해한 뒤 이돈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남궁민 기자

공범 월세계약 해지 후 중국 출국

중국으로 달아난 공범 중국 동포 박모(32)씨 등 3명의 행적도 일부 추가로 확인됐다. 이들은 이씨 부모가 아파트로 진입한 지 2시간 만에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후 택시를 타고 함께 모여 살던 인천 간석동으로 우선 피신했다. 전화로 월세 계약을 해지한 뒤 3매의 항공권을 예약했다. 범행 당일 오후 늦게 인천공항에서 칭다오로 출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얼마를 갖고 도주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김씨의 모친이 21일 오전 경찰에 자진 출석해 2억5000만원을 제출했고 검거 당시 김씨의 수중에는 1800만원이 있었다. 김씨 측 변호사는 “(강탈한) 금액이 5억원이 안 된다. 중국 동포가 6000만~7000만원을 갖고 갔다”고 주장했다. 현재 박씨 일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앞서 김씨는 범행 9일 전인 지난달 16일 월 300만~1000만원의 개인 경호팀 구인 광고 글을 올렸다. 한자를 섞어 ‘不法滯留者(불법체류자)지원가능’이라고 썼다. 자신을 ‘김실장’이라며 휴대전화(010 87XX XXXX) 번호도 남겼다. 박씨 일당은 이 글을 보고 김씨에게 연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희진씨 부모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모씨가 범행 전 올린 구인광고. [사진 모 구인업체 홈페이지 캡처]

이희진씨 부모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모씨가 범행 전 올린 구인광고. [사진 모 구인업체 홈페이지 캡처]

주요 인물만 8명 등장한 복잡한 사건

복잡한 사건의 윤곽도 잡히고 있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직·간접적인 관계의 주요 인물은 8명이다. 주범격인 김씨, 공범 중국 동포 박씨 일당 3명 등 피의자 4명 외 참고인 4명이 추가된다. 김씨가 뒷수습을 위해 도움을 요청한 김씨 친구 A씨, 실제 범행현장에 온 A씨 지인 2명, 그리고 김씨가 이씨 아버지(62)의 벤츠 E클래스 차량을 훔치기 위해 부른 대리기사 B씨가 포함된다. 김씨는 범행 후 친구 A씨에게 전화해 “싸움이 났다. 중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과거 태권도 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 수 없었던 A씨는 자신의 지인 2명을 보냈다. 이들은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보고선 20분 만에 현장을 벗어났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김씨에게 ‘신고’를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은 현재 이들의 범죄연루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리기사 B씨는 김씨를 따라 차를 평택 창고 쪽으로 옮긴 인물이다. 당시 차량 트렁크에는 혈흔이 묻은 이불이 실려 있었다. 경찰은 B씨를 참고인으로 올려놨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여러 진술의 신빙성이 낮아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김민욱·최모란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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