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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혈전' 벌이던 검·경, 조폭 33명 검거에 '의기투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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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전주지검이 19일 "지난 1년간 전주 지역 3개 파 조직폭력배 33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밝히며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검찰과 경찰 로고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김준희 기자

전주지검이 19일 "지난 1년간 전주 지역 3개 파 조직폭력배 33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밝히며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검찰과 경찰 로고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김준희 기자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사사건건 부딪쳐 온 검찰과 경찰이 3개 조직 폭력배 수십 명 일망타진에 의기투합했다. 조폭들은 서로 난투극을 벌이거나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시민을 '묻지 마'식으로 집단 폭행했다. 또 탈퇴 의사를 밝힌 조직원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전주지검, 월드컵·나이트·오거리파 일망타진 #조직 간 패싸움, 일반인·동료 집단 구타 혐의 #징역 1년6개월~4년…"교도소 내 충돌 잦아" #"두 기관 갈등 부정적 여론 물타기" 지적도

전주지검은 19일 "전주 완산경찰서와 손잡고 지난해 4월부터 이달까지 1년간 전주 지역 폭력조직 월드컵파·나이트파·오거리파 조직원 33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20대인 이들은 범죄단체를 구성해 패싸움을 하고, 일반 시민과 탈퇴 조직원을 집단 구타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특수상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3개 조직은 전주 지역 전체 6개 폭력 조직(조직원 300여 명) 중에서도 세력이 크고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지난 1982년 같은 해 조직된 월드컵파와 나이트파 조직원은 각각 76명과 67명, 1986년에 만들어진 오거리파는 62명이 활동하고 있다. 30년 넘게 전주에서 살인과 폭행·갈취 등을 일삼아 악명이 높다.

최대호 전주지검 형사1부 검사. 김준희 기자

최대호 전주지검 형사1부 검사. 김준희 기자

지난해 6월 월드컵파와 나이트파 양쪽 조직원 14명이 구속기소 된 사건은 그해 4월 17일 새벽 전주시 서신동 한 술집에서 벌어진 사소한 말다툼이 화근이 됐다. 나이트파 조직원 A씨(27)의 여자 친구가 월드컵파 조직원 B씨(28)가 운영하는 술집에 갔다가 옆자리 남성들과 시비 끝에 조직 간 패싸움으로 번졌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월드컵파 5명과 나이트파 9명이 야구방망이와 흉기를 휘두르며 난투극을 벌였다.

1차 충돌은 2차 '진검 승부'로 이어졌다. 두 조직 선배들은 "일대일로 싸워 지는 쪽이 항복하고 사과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같은 날 오후 10시쯤 우아동 아중호수 근처 인적이 드문 마을에 모였다. 양 조직에서 2명씩 뽑아 일대일 맨주먹 싸움을 했다. 월드컵파 7명과 나이트파 4명이 대치한 가운데 맞붙은 싸움은 나이트파의 2:0 승으로 1시간 만에 끝났다.

오거리파의 범죄도 만만찮다. 지난해 6월 3일 오거리파 조직원 C씨(26)는 길거리에서 쳐다본다는 이유로 맥주병으로 한 남성의 머리를 때려 상해를 입혔다. 뒤늦게 피해 남성의 친구 2명이 항의하자 조직원 4명은 목검 등으로 이들을 때렸다. 같은 달 6일 조직원 D씨(24) 등 3명은 탈퇴 의사를 밝힌 후배(23)를 조직원 숙소에서 마구 때려 중상을 입혔다.

검찰은 이번에 3개 파 조직원 30여 명이 무더기로 검거되면서 조직 활동은 다소 잠잠해졌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재판에 넘겨진 조폭들은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직원 29명은 징역 1년6개월~4년, 나머지 4명은 1심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달아난 조직원 2명을 쫓고 있다.

검찰은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경찰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각자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다양한 범죄정보 수집과 피의자 신병 확보, 수십 명의 피의자 및 참고인 조사, 폐쇄회로TV(CCTV) 영상·휴대전화 등 증거 분석을 진행했다. 검찰은 범죄단체 활동에 대한 판례 및 법리 검토, 보강 증거 등에 대한 수사 지휘, 기소 후 공소 유지를 맡았다.

이례적으로 검찰·경찰 로고가 나란히 그려진 보도자료도 배포했다. 자료 제목도 '검·경 협력'을 앞세웠다. 이를 두고 검·경 안팎에서는 "사실상 지난해 끝난 사건을 이 시점에 다시 성과로 알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며 "수사권 조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빚어 온 검찰과 경찰이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관정 전주지검 차장검사는 "오해"라며 "최근 기소에 맞춰 발표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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