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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수목장림 공공시설로 시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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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며칠 전 산림청과 산림포럼.'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관계자들과 함께 수목장림 후보지 두 곳을 다녀왔다. 좁은 국토에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분묘.공원묘지.납골묘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고, 새로운 대안적 장묘제가 모색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그러다 김장수 전 고려대 교수, 역사 저술가인 임종국 선생의 수목장 사실은 국민에게 신선하면서도 잔잔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수목장을 받아들이겠다는 여론이 10명 가운데 6명 이상(61%) 되었다는 사실은 수천 년 동안 분묘제 장례문화를 이어 온 우리의 전통상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목장림 후보지 두 곳은 북부산림청 관할 국유림인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 산 50㏊와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금왕리산 188㏊다.

첫 후보지는 서울에서 130㎞ 거리에 있고, 영동고속도로 둔내 나들목 바로 옆 청태산 자연휴양림 부근이다. 해발 600~650m인 이곳은 북서향의 경사 15~25도 지형이며 수령 40년생 잣나무와 30년생 소나무.활엽수들이 혼재돼 있다.

둘째 후보지는 서울에서 110㎞ 떨어져 있고, 396번 지방도에서 좌우로 들어갈 수 있는 해발 350~450m, 남동향의 경사 15~25도 지형이다. 중산간에 내놓은 임도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30년생 잣나무가, 아래쪽으로는 30년생 굴참나무 등 활엽수가 밀생하고 있다.

산림청.산림포럼 관계자들은 수목장림의 입법화에 대비해 왔다. 수목장림이 처음 만들어질 경우 그것은 반드시 공공(국립 혹은 도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원묘지나 납골묘처럼 사사로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개인이나 사기업에 맡길 경우 투기.폭리.호화시설로 전락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잘 생긴 나무 한 그루에 수백만,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수목장림이 공공시설로 출발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생하며 살던 서민도 세상을 떠나서일 망정 돈이 없어 죽음의 존엄이 훼손됨 없이, 국가의 시책으로 영원한 안식처를 얻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장묘제를 품위있게, 그리고 정중하게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 대체해 나가려면 처음부터 계층적인 갈등.시기심을 불러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셋째, 궁극적으로 30~50년에 걸쳐 수목장림의 정착을 통해 분묘와 납골묘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조상의 안식처가 후손의 삶의 공간에 부담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귀중한 유산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올 가을 정기국회는 장례법을 개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산림청 사이에 심각한 견해차가 있다. 복지부는 분묘와 납골묘 등 기존 장묘제를 관장해 온 부처로서 수목장림의 소관 부처가 되려는 산림청을 견제하는 입장이다. 복지부 측은 수목장이나 수목장림도 장의시설로 간주, 사영업자가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제사도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게 하자는 입장인 반면 산림청은 수목장림을 숲으로 키워가자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산림청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 한다. 기존 장묘제를 성숙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공공적 수목장림으로 대체해갈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정책 선택일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과감하게 부처 이기주의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대통령이나 총리가 부처 간의 정책조정을 통해 소기의 입법 목적을 이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 장묘업자에게 시달려 온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서만은 먼 장래를 내다보고 개정 법안을 심리.입법해 줬으면 한다.

이부영 산림포럼·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