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점진적 비핵화 안 된다” 볼턴 빅딜론과 노선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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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오른쪽)가 11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이 워싱턴에서 주최한 핵정책 국제회의에 참석해 대담하고 있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점진적 비핵화를 거부했다. [JTBC 캡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오른쪽)가 11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이 워싱턴에서 주최한 핵정책 국제회의에 참석해 대담하고 있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점진적 비핵화를 거부했다. [JTBC 캡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간) “점진적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얻어야 제재 해제를 할 것”이라며 한 발언이다. 지난주 국무부 고위 관료가 “트럼프 행정부 내 아무도 단계적 비핵화 해법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의 연장선이다. 비건 대표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모든 핵시설과 대량파괴무기(WMD)를 한꺼번에 폐기하는 ‘빅딜’을 밝힌 데 대해서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북한의 동창리 및 산음동 연구단지 내 미사일 동향에 대해선 “김정은 위원장이 무엇을 결정했는지 모르지만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밝힌 대로 우리 입장은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FFVD 얻어야 제재 해제” 강조 #‘핵시설·WMD 한꺼번에 폐기’ #볼턴과 같은 목소리 내기 시작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재확인

비건 대표는 이날 카네기재단 국제 핵 정책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을 점진적으로 비핵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분명히 해왔고 미 정부도 이 입장에 완전히 일치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노이 회담 결렬은 부분적 핵 프로그램의 대가로 전체 제재 해제를 원했기 때문이고, 이는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계속하도록 보조금을 주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토털 솔루션, 완전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김 위원장의 빅딜 수용으로 성공하길 원했지만 이런 포괄적 기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간 격차(gap)는 크지만 우리는 외교의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며 대통령도 대화 지속엔 100%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이 인위적 시한을 설정하지 않았지만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고 북한이 협력한다면 1년 안에도 가능하다”며 “대통령 첫 임기 내 비핵화를 완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북한이 제안한 영변 핵시설에 대해 “2008년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신고한 것은 플루토늄 원자로와 재처리시설뿐이며, 우리는 북한이 10여 년간 영변에 미신고 우라늄 농축시설을 개발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변은 “(민수용)핵연료 생산시설도 포함된 산업단지로, 비핵화 과정에 신고가 수반돼야 하며, 북한 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화학무기 폐기 거론과 관련해 “골대를 옮긴 게 아니냐”는 질문에 “생화학무기는 우리뿐 아니라 한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이 용납할 수 없고 유엔 제재 결의안이 요구하는 사항이다. 이 문제를 북한 사람들과 논의해왔고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볼턴 보좌관의 관여로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진 게 아니냐는 질문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강경하지 않다. 처음부터 FFVD 달성이 목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달성해야 제재 해제가 뒤따를 것이라고 해왔다”고 강조했다.

미 행정부의 일치된 ‘빅딜’ 요구에 대해 북한은 12일 ‘단계적 비핵화’라는 기존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대남선전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는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논의된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미국과) 이어 나가기로 하시였다”고 전했다. 전날 통일신보는 ‘옳은 주견과 배짱을 가지고 임하여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에 제안한 ‘영변 폐기와 일부 제재 해제’ 안을 언급하며 “두 나라 사이의 신뢰조성과 단계적 해결원칙에 따라 가장 현실적이며 통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화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단계적 비핵화’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미국의 ‘빅딜’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온라인 매체를 통해 밝혔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31일 단계적·병행적 비핵화라는 해법으로 이견을 좁히려 했던 비건 대표마저 빅딜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맞선 모양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정용수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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