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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간부들 투표소에 김정은의 정책 방향 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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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11일 전날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한국의 총선) 소식을 전하며 고위 간부들의 투표 장소를 하나하나 공개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 지배인에게, 최용해 당 조직지도부장은 국가과학원장에게, 박봉주 총리는 황해제철연합기업소 반장 등에게 투표했다는 식이다. 북한의 당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국원 29명 중 18명과 우당인 조선사회민주당 김영대 위원장 등이 소개됐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2014년 3월 9일 진행된 13기 대의원 선거 때에도 당과 정부의 간부들이 투표에 참여한 사실을 전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당시엔 보도에 언급된 인원도 적었고, 김영춘ㆍ오극렬 등의 투표소식은 숫자로 된 선거구만 밝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김정은 국무 위원장은 김일성 정치대학에서 투표했고, 최용해ㆍ김경옥ㆍ황병서ㆍ김여정 등이 동행했다”며 “5년 전 선거 때 투표장에 동행했던 최용해 등 주요 인사들은 다른 선거구에 가서 투표하고, 김 위원장을 수행한 인사들을 밝히지 않는 등 차이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단, 이수용 당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과 같은 장소인 김책공대에서 투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이와 관련, 북한이 김 위원장의 정책 방향을 부각하려는 차원에서 간부들의 투표 장소를 배분하고, 이를 공개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경제 회복의 기반이 되는 철도와 제철, 과학, 식량, 교육 등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정책 분야의 ‘현장’이자 기반 시설에 주요 간부들이 찾아가 투표를 했다는 점에서다. 자신이 사는곳에서 투표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양곡산공장(양형섭), 김일성 종합대(김평해). 평양 기초식품공장(안정수), 중앙통신국(김영철). 사리원 미곡 협동농장(박태덕) 등 분야별 거점 장소를 찾은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일 오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기 위해 이 대학에 마련된 투표장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용차량에서 내려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일 오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기 위해 이 대학에 마련된 투표장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용차량에서 내려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특히 정치국원들의 투표 장소는 경제 건설 현장과 더불어 김일성 종합대학(김평해)과 김책공대(김정은·이수용), 평양제1중학교(김영대), 평양제4소학교(최휘) 등 교육 시설들이 눈에 띈다. 이는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는 최근 북한의 과학 및 교육 중시 정책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위원장은 과학기술의 요람으로 꼽고 있는 김책공대에서투표하고 “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주요 전구마다에서 김책공업종합대학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대학이 과학교육사업과 경제의 활성화, 인민생활향상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는 데서 우리 당이 제일 믿고 있는 맏아들, 나라의 과학교육과 경제건설을 견인하는 기관차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 나가도록 앞으로 일을 더 잘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10일 남한의 국회의원 총선거에 해당하는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진행했다. 북한TV가 이날 공개한 투표용지에는 가운데 붉은 색으로 새긴 북한 국장이 있고, 그 아래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표'라고 새겨져 있었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은 10일 남한의 국회의원 총선거에 해당하는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진행했다. 북한TV가 이날 공개한 투표용지에는 가운데 붉은 색으로 새긴 북한 국장이 있고, 그 아래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표'라고 새겨져 있었다. [사진 연합뉴스]

신문에 소개된 고위 간부들도 투표장에서 대의원에 입후보한 현장 책임자들을 만나 성과를 독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은 자원과 자본이 부족해 전반적인 경제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번에 노동신문에 소개된 교육과 산업시설의 선거구를 통해 김 위원장이 후대양성과 인민생활 향상, 경제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정책 방향이 읽힌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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