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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꼴페미 영화’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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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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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다시 두 쪽난 듯했다. 페미니즘과 반(反)페미니즘으로다. 영화 ‘캡틴 마블’ 때문이다. 개봉 전부터 불씨를 던졌다. 여성 히어로가 단독 주인공인 마블 최초의 작품인 데다가, 제작 측도 ‘페미니즘 영화’임을 내세웠다. 북미에서는 아예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에 개봉했다. 주연은 이른바 ‘페미나치(극렬 페미니즘)’의 여전사쯤으로 여겨지는 브리 라슨이다. 라슨은 SNS 활동과 각종 인터뷰를 통해 그런 이미지를 심었다.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꼴페미 영화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일부 게시판은 라슨의 외모를 비하하는 콘텐츠로 도배가 됐다. 포털 사이트 평점에선 성별 대립 양상까지 나타났다. 10점 만점에 남성은 평균 4점, 여성은 9점을 줬다.

그랬던 영화가 지난주 막을 올렸다. ‘이게 페미니즘 영화라고?’라는 의문부터 든다. 몇몇 요소는 있다.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받으면서 “여자는 안 된다”고 조롱받는 대목 등이다. 하지만 그건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 정도였다. 히어로 영화에 빠짐없이 나오는, 그런 설정 말이다. 그것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스토리였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조종사 훈련을 받던 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으니까. 실제로 미국 공군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지니 리빗)는 93년에야 탄생했다. 그래서 주인공이 조롱받는 대목은 페미니즘이라기보다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다가왔다.

극강의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여성이라는 점 자체가 페미니즘이라면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이언맨·캡틴 아메리카·스파이더맨·헐크·닥터 스트레인지 등등 남성 히어로 영화만 넘치던 상황 아닌가. 이제야 캡틴 마블을 제작한 건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감마저 있다.

페미니즘 논란은 개봉 후 꽤 달라졌다. 실제 영화를 본 관람객 평점은 남성 8.3, 여성 8.8이다. 관객몰이도 하고 있다. 막을 올리고 나흘째인 지난 토요일까지 218만 명이 봤다. 관람객은 대부분 커플이다. 그러고 보면 제작사 측이 ‘페미니즘 영화’라 했던 건 마케팅 전략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갈등을 이용해 관심을 끄는 전략 말이다.

캡틴 마블을 둘러싼 남혐-여혐 대립은 개봉과 함께 사라지다시피 했다. 양측이 서로에게 퍼붓던 증오서린 공격은 이제 그닥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기·승·전-적폐 청산’과 ‘5·18 괴물’로 대변되는 극한 진영 대립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이걸 봉합해 줄 히어로는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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