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로또’ 사라진다…주변 시세 맞먹는 분양가 속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지난해 11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분양한 '힐스테이트 녹번역' 견본주택의 모습. [사진 현대건설]

지난해 11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분양한 '힐스테이트 녹번역' 견본주택의 모습. [사진 현대건설]

지난달 말 청약접수한 서울 홍제동 ‘홍제역 해링턴플레이스’는 이 일대에서 분양가 신고가를 기록했다. ‘3.3㎡당 2000만원’선도 깼다. 3.3㎡당 평균 분양가가 2469만원으로, 일부 전용면적 84㎡의 경우 중도금 대출 보증 상한선인 9억원에 간당간당한 8억9128만원에 달했다.

최근 서울지역에 나온 아파트들 #주변 단지와 가격차 거의 없어 #분양가 잡는 ‘110%룰’ 규제 구멍 #차익 기대한 묻지마 청약 삼가야

지난해 11월 분양한 서울 녹번동 ‘힐스테이트 녹번역’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995만원이었다. 지하철역으로 한 정거장 가량 떨어진 두 단지의 분양가가 4개월 만에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서울 전역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정한 고분양가 관리지역이다. 2017년 3월부터 HUG는 고분양가 사업장의 경우 1년 이내 인근 신규 사업장의 평균 분양가의 110%를 넘지 않게 통제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분양보증을 안 한다. 사업장마다 지켜야 하는 ‘110% 룰’이다.

지난해 집값 폭등기에 분양시장에서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이 ‘로또 아파트’로 불리며 청약 광풍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다 보니 기대 차익이 컸다.

HUG가 고분양가 지역의 분양 보증을 심사할 때 분양가를 비교하는 사업장 기준은 자치구 단위다. HUG 측은 “‘홍제역 해링턴플레이스’와 ‘힐스테이트 녹번역’은 가깝지만, 각각 서대문구와 은평구에 위치해 분양가 비교 사업장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분양가 비교 대상이 다른 것이다.

같은 자치구에 최근 1년 이내에 분양한 아파트가 없을 경우엔 분양가를 준공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 대비 110%를 넘지 않게 규제한다. HUG 관계자는 “홍제역 해링턴플레이스의 경우 인근 준공 단지의 매매가와 비교해 분양가를 책정했다”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홍제역 인근에 있는 ‘홍제 센트럴 아이파크’의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달 분양권이 9억 원대에 거래됐다. 그나마 서대문구에서 가장 최근에 분양한 단지는 지난해 6월 분양한 북아현동 ‘힐스테이트 신촌’이다. 3.3㎡당 평균 분양가는 2573만원이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HUG에 따르면 최근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 파크’와 ‘e편한세상 청계 센트럴 포레’ 등도 인근 준공 아파트 시세와 비교해 분양가가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노태욱 강남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같은 생활권이 아닌 구 단위로 묶어 인위적으로 분양가를 통제하는 관 주도형 정책의 한계”라며 “산정 기준이 모호한 공시지가와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시세를 따라 오른 분양가는 분양을 앞둔 단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HUG가 분양가를 통제하겠다고 만든 ‘110% 룰’의 아이러니다. 홍제역 일대에는 ‘홍제1구역 주택재건축’ ‘홍은제13구역 주택재정비사업’ 등 올해 분양을 앞둔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110% 룰이 분양가가 확 뛰지 못하게 방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시장에서 볼 때 가격을 꾸준히 올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홍제 센트럴 아이파크’의 분양가가 인근 단지의 청약지표로 활용될 것이나, 분양가 9억원이 넘어가면 중도금 대출이 안 되다 보니 사업장마다 눈치작전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아파트 분양가는 더 오를 전망이다. 국토부는 지난 1일부터 공사비 증감요인을 반영해 기본형 건축비를 2.25% 인상했다. 업계에서는 건축비 상승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본형 건축비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택지지구 등 공공택지 물량에 적용된다.

업체들은 건축비 인상분을 반영해 분양가를 책정하기 위해 3월 이후로 분양을 미뤘다. 지난달 현대엔지니어링이 위례신도시 A3-4a 블록에 공급하려던 ‘힐스테이트 북위례’도 분양 일정을 이달로 연기했다. 부동산정보서비스 직방에 따르면 2월에 분양예정이던 아파트의 분양률이 58%에 그쳤다.

대형 건설회사 관계자는 “52시간 근무제에 최저임금 인상, 기본형 건축비 상승 등 각종 인상요인으로 분양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분양가는 슬금슬금 오르고 아파트값은 내리고 있어 분양가와 주변 시세간 시세차익이 줄고 있다"며 "'분양 로또'가 반 토막나는 셈이고, 미분양도 우려되는만큼 로또를 기대한 ‘묻지마 청약’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