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7번째 30-50클럽…내 지갑은 왜 가볍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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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축포를 터뜨리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소득수준과는 괴리가 있어서다. 고용 상황은 좋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 데다 소득 양극화도 심해지면서 반쪽짜리 성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기업 주머니만 두둑해지고 #소득 양극화, 실질 구매력 하락 #“새 먹거리 못 찾으면 후퇴할 수도”

한국은행은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349달러로 전년(2만9745달러)보다 5.4% 늘었다고 5일 발표했다. 달러 기준으로 2006년 2만 달러를 돌파한 뒤 12년 만에 3만 달러 고지에 올랐다. 이로써 한국은 1인당 GNI가 3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는 5000만 명 이상인 ‘30-50클럽’에 세계에서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인당 GNI에는 가계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 소득도 포함된다. 나라 경제가 성장하며 기업과 정부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지만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렸다. 3만 달러 달성을 국민 개개인이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해 소득 5분위 배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커졌다. 그만큼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의미다.

한은은 “경제성장률뿐 아니라 환율 등 여러 가지 요인이 1인당 GNI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환율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원화로는 같은 소득이라도 원화가치가 상승(환율은 하락)하면 달러 기준 평가액은 커진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전년 대비)를 기록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1.1%)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다. 물가를 고려하면 가계나 기업의 소득이 별로 늘지 않았다는 의미다.

소득의 실질적인 구매력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실질 GNI 증가율은 1%(전년 대비)에 그쳤다. 실질 GDP 성장률(2.7%)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은행은 “국제 유가 상승으로 교역 조건이 악화하며 실질 무역이익이 줄어든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어렵게 3만 달러 문턱은 넘었지만 4만 달러 고지로 향하는 여정은 ‘고난의 행군’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를 끌고 갈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어서다. 특히 반도체와 조선 등 주력 산업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과 갈수록 빨라지는 고령화로 인해 현재 연 2.8~2.9% 수준인 잠재성장률도 더 떨어질 수 있다.

한국에 앞서 ‘30-50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미국·프랑스·영국·독일·일본·이탈리아 등 6개국뿐이다. 1인당 GNI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까지 도약하는 데 걸린 시간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일본과 독일은 5년, 미국은 9년이 걸렸다. 영국은 11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4년 만에 3만 달러를 달성했다. 일본은 6개국 중 가장 빨리 92년 3만 달러, 95년 4만 달러 고지를 밟았지만 현재는 3만 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28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한국을 포함한 23개국이다. 일반적으로 1인당 GNI 3만 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기준으로 여겨진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 경제가 1인당 GNI 3만 달러에 진입했지만 환율 등의 요인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며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찾아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4만 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 “올해 한국 2.1% 성장”=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가 2.1%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망치보다 0.2%포인트 낮춘 것이다. 한은(2.6%)이나 정부 전망치(2.6~2.7%)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투자 부진에다 수출 악화, 고용 위축 등이 한국 경제를 어둡게 본 이유라고 무디스는 설명했다.

주정완·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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