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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커 게이트' 이탈리아 4강 발목 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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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탈리아 프로축구의 승부 조작 스캔들이 독일 월드컵까지 번졌다. 이탈리아 검찰이 최근 승부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구단 관계자와 심판 등 26명을 기소했고, 28일(한국시간)엔 스캔들의 핵심인 유벤투스 구단 매니저가 투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7월 1일 오전 4시 우크라이나와 8강전을 치러야 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은 기자회견 도중 이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를 뜨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과연 8강전에서 이탈리아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어떤 사건인가=2004년 말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1부리그)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선수와 구단 관계자의 전화 통화를 감청하던 이탈리아 검찰은 의외의 내용을 듣게 된다. 당시 명문 구단 유벤투스의 단장인 루치아노 모지가 이탈리아축구연맹(IFGC) 간부에게 특정 심판의 배정을 청탁하는 내용이었다. 그 심판에게 사례비로 얼마를 건넸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를 단서로 1년 넘게 수사망을 좁혀온 검찰은 지난달 그동안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모지 전 단장을 소환했다.

검찰에 따르면 모지 전 단장은 IFGC 간부를 통해 2004~2005시즌 29경기에서 주.부심이 유벤투스에 유리한 판정을 내리고 상대방 핵심 선수에게 경고.퇴장 명령을 내리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심판협회 임원에게 최고급 스포츠카를 선물하는 등 막대한 뇌물 공세가 이어졌다. 말을 듣지 않는 심판은 경기장 라커룸에 가둬놓고 협박하기도 했고, 방송국에도 시빗거리가 될 장면은 리플레이하지 말도록 유력 인사를 통해 압력을 가했다.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한 심판은 5월 이탈리아의 한 지상파 TV에 나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면 심판을 볼 수가 없었다. 나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양심고백을 하기도 했다.

파장은 커졌다. 모지 단장과 유벤투스의 핵심 간부들은 물론, 승부 조작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코 크라로 IFGC 회장과 간부들도 자리에서 쫓겨났다. 수사는 다른 명문 구단으로 확대됐다. 잔루이지 부폰과 파비오 칸나바로 등 유벤투스 소속 대표선수들은 독일 월드컵 훈련 도중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IFGC도 1990년대 이탈리아 정치부패 척결을 주도한 프랑코 보렐리 판사를 축구 비리 특별조사팀장에 임명해 자체 조사에 나섰다. 이탈리아 체육부 장관의 입에서는 "독일 월드컵 포기와 대표팀 해체를 검토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탈리아 TV에서는 승부 조작 혐의가 있는 29경기를 되풀이해 방영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하나같이 유벤투스에 유리하게 판정이 내려지는 장면이었다. 한 시민은 TV 뉴스에서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어린이들의 희망이요, 꿈이었다. 이번 스캔들은 이탈리아 어린이들의 꿈을 빼앗아간,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라고 절규하기도 했다.

◆ 전망=이탈리아 검찰은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체코의 조별리그 경기 직후인 23일 유벤투스와 AC 밀란.라치오.피오렌티나 등 4개 구단 관계자와 IFGC 인사, 심판 등 26명을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별도로 IFGC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7월 초에 열리는 스포츠 재판에서 혐의가 인정될 경우 해당 구단과 관련자들은 중징계를 받아야 한다.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유벤투스를 비롯해 기소된 상당수 구단의 하위 리그 강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세리에A 110년 역사에서 29차례나 우승을 일군 명문 구단 유벤투스는 3부 리그로까지 강등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2억6800만 유로(약 3400억원)에 달하는 방송 중계권료 등이 사라지고 스타 선수들의 고액 연봉을 감당할 수 없게 돼 이들이 대거 팀을 떠날 수도 있다. 팀 해체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유벤투스 소속 이탈리아 대표선수는 부폰.칸나바로.참브로타.카모라네시.델피에로 등 5명이나 된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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