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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4주기] 유족들 "정부 너무 무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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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해교전 4주기 추모식이 대한민국 해군동지회 주최로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해군동지회 소속 예비역 군인들이 전사자들의 영정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천형이 딸이 벌써 다섯 살인데 요새 자꾸만 아빠를 찾아 그럴 때마다 가슴에 묻은 아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요."

서해교전 때 전사한 고 조천형 중사의 어머니 임헌순(60)씨는 고인의 부조상에 얼굴을 비비며 "천형아 엄마가 왔어…"라고 오열했다.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서해교전 4주기를 맞아 전사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서해교전은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이 기습적으로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정(357호정)에 사격을 가해 침몰시킨 사건이다. 북한의 도발로 정장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와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올해도 추모식엔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남해일 해군참모총장이 참석했을 뿐 대통령과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과 총리는 4년 내내 한번도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서주석 청와대 안보수석이 참석해 헌화만 했다. 지난해엔 대통령이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윤 장관도 처음엔 참석하지 않으려다 일정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한나라당 김영선 대표, 민주당 장상 대표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으며 손학규 경기지사도 자리를 같이했다.

유가족 19명과 참수리정 승조 장병 14명, 해군 장병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5분 동안 진행된 추모식에선 시작부터 유족들의 흐느낌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추도식을 주관한 김중련 2함대사령관이 숨진 장병의 이름과 직책을 호명하자 유족들의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고 한상국 중사의 어머니 문화순(60)씨는 "월드컵이 열린 4년 전 오늘 상국이가 떠났는데 아들 생각이 나 이번 월드컵(경기)을 한번도 안 봤다"며 "올해는 월드컵 때문에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중사의 아버지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부나 국민이나 다 (무관심한 것은) 똑같다"며 "자식 잃은 부모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고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씨는 "엄마야, 엄마가 왔는데…"라며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으며 흐느꼈다. 고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64.해사 18기)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추모식 내내 눈물을 애써 참았다. 유족들은 서해교전 이후 매년 음.양력 기일, 현충일, 명절 등 1년에 5~6 차례씩 만나고 있으며, 4주기에 앞서 28일 2함대 군인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날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해군동지회가 주최한 '6.29 서해교전 4주기 추모행사'에는 해군 예비역과 보수단체 회원,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간이의자와 천막으로 차려진 조촐한 자리였다. 고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53)씨는 "더 크게 추모행사가 열려 많은 국민이 같이하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 행사에선 전사자와 유족에 무관심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나라사랑어머니회 권명호 회장이 추도사에서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모두 위령제 한번 변변히 치러주지 않고 전사자들을 홀대했다"고 성토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자유넷 봉태홍 대표도 "노무현 정부가 서해교전 전사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고 한상국 중사의 아버지 한진복(61)씨는 "유족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대우가 보잘것없어 섭섭한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택=이가영 기자, 한애란 기자<ideal@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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