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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변폐기 합의 후 ‘살라미 전술’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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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협상 수단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전문가들은 북미가 영변 핵시설 폐기에 합의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북한이 합의 이후 ‘살라미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2일 보도했다.

CVID 없이 ‘제재 완화’ 꺼낸 트럼프 #일각에선 ‘쪼개기 핵 담판’ 우려도

사진은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사진은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살라미 전술은 하나의 과제를 여러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 가는 협상전술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북한이 이행 방안과 관련한 의제를 잘게 나눠 협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매체에 따르면 한국 전문가들은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통해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와 같은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달 스탠퍼드대학교가 주최한 강연에서 “김 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해체와 파괴를 약속했다”며 이번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390여 개의 방대한 핵관련 시설이 밀집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기 약속만 얻어내도 만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비건 대표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언급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까지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구체적인 ‘추가적 비핵화 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러 의견이 제기된다. 다만 북미가 ‘추가적 비핵화 조치’에 대해 국제사회의 사찰과 검증까지 수용한다는 수준으로 논의한다면 충분히 합의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벌어질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이행방안을 논의하는 실무협상이다. 과거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임하면서 관련 의제를 잘게 나누어 실질적인 합의와 이행 등을 지연시키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한 바 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영변 핵시설 폐기를 비롯한 구체적인 북한 비핵화 이행 방안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다면 미북 정상 간의 합의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영호 강원대 교수는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관련해 구체적인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합의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것은 다음에 협상하겠다고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영변 시설에 대해 동결, 사찰, 검증을 받겠다는 수준까지 밝히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성공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를 미북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휘락 국민대 교수는 “영변 핵시설을 두고 협상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 핵물질을 생산한 북한에 영변 핵시설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북한은 쓸 데가 없는 용도 폐기된 것을 폐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큰 결단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전날“통일연구원이 한국의 내신기자들을 상대로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핵무기 전체 공정에서 핵물질을 활용하는 비율이 90%”라며 “핵물질 생산 핵심 원천이 영변에 있다”고 강조했다.

홍 실장은 “영변 외의 지역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더라도 영변 핵시설이 폐기되면 북한의 핵 능력은지속해서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영변 핵시설이 ‘고철 더미’에 불과하다는 평가는 잘못된 이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이틀간 만날 것”이라며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고,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북 제재와 관련‘완화(relief)’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작년까지 늘 강조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는 사라졌다. 추가 정상회담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다. 전날 “핵실험이 없는 한 서두를 것이 없다”는 언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북한의 단계적 핵협상을 수용한 데 이어 정상회담도 ‘쪼개기 핵 담판’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 내 반(反)트럼프 진영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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