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 때 헤어진 장남한눈에 알아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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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여보, 주정아….』『영감.』 『아버님….』18일 오후 부산 김해공항 대합실-.
사할린땅에서 반평생 망향의 한을 달래다 일가족 8명을 데리고 영주귀국한 엄철영씨(73)와 결혼 5년만에 생이별했다가 43년만에 70노인이 된 남편을 재회한 부인 서조야씨(67), 두살때 아버지와 헤어져 이제 장년이된 장남 주정씨(46)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 얼싸안고 서러움과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엄씨는 1940년 고향인 경남 울주군 온양면 동상리에서 이웃마을처녀서씨와 결혼한 후 일자리를 찾아 이듬해 일본으로 떠났다. 당시 일본영토이던 사할린에 가 광부로 자리잡은 남편을 따라 부인 서씨도 42년 사할린으로 갔고 43년 장남 주정씨를 낳았다.
해방이 되자 엄씨는 부인과 장남을 먼저 보낸뒤 자신도 곧 귀국하려다 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진주하는 바람에 귀국길이 막혀버렸다.
오도가도 못하고 소련땅에 살게된 엄씨는 54년 동포여자와 재혼해 장녀 명수씨(37)와 차남 춘호씨(30)를 낳고 「제2의 인생」을 살아왔다. 재혼한 부인은 77년 사망해 이번 귀국길에는 그 사이에서 낳은 자녀·손자들만 왔다.
공항에서 엄씨는 『48년만에 고국당을 다시 밟게돼 기쁘기 그지없다』며 『친구들도 만나보고 조국 곳곳에도 다녀보겠다』고 말했다. 또 사할린에서 하루라도 빨리 귀국을 고대하고있는 남은 동포들도 자신처럼 귀국길이 열리기를 바라며 우리 정부가 좀더 관심을 갖고 귀환 사업을 추진해 줄것을 촉구했다.
부산에서 전자대리점을 경영하는 장남 주정씨는『아버지와 두동생 가족의 생활을 위해 집 두채를 마련했다』며 『우리말을 모르는 동생가족들을 위해 통역을 맡을 러시아어전공 대학생을 구해야겠다』며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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