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직할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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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개성시가 개풍·판문군을 묶어 직할시로 된것은 l955년이였다. 개풍군은 52년의 행정구역 개편때 먼저 경기도에서 개성시로 편입되었고, 판문군은 같은해 개풍·장단군일부를 합쳐 신설된뒤 55년에 개성시에 합쳐졌다.
여기에 장풍군이 45년 장단군의 5개면과 개풍군의 2개면을 합쳐 신설된뒤 60년에 개성시로 넘어와 현재 개성직할시는 l개시·3개군으로 구성되어 오고있다.
북한에서 개성지방은 「사회주의 경공업도시」이자 「풍요한 농촌」으로 내세워진다.
한강·임진강·예성강이 개성의 남부경계에서 합류하고 임진강 지류인 사천강등 수자원이 풍부한데다 풍덕벌·삼성벌·신광벌등 평야지대와 따뜻한 기후조건까지 갓추어 개성지방은북한의 주요 벼생산지로 꼽힌다.
황해의 짠물이 홍수때면 역류하고 가뭄이면 조갈을 유난히 타는 간석지의 불리를 해소하기 위해 60년에 황강포배수갑문등 7개의 갑문이 설치되었다.
이와함께 수리시설건설이 집중되어 개성시에 송도저수지등 18개의 저수지와 1백50개의 양수장이, 판문군 및 개풍군등지에도 저수지와 양수장이 설치되어 수백km의 수로를 따라 장풍땅의 다락밭까지 수리시설의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갈은 수리시설은 기존의 경지 이상으로 개풍군 일대에 조성된 수백정보의 간석지를 비롯, 습지와 모래땅, 산지등을 농지로 전용함에 따라 더욱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부터 이름높은 개성인삼은 주로 개풍군과 판문군에서 재배된다. 외화를 버는 원천의 하나인 인삼은 북한에서 1백여가지 제품으로 개발되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인삼탕·꿀삼·인삼정액·고려선녀삼·인삼영양정·인삼엑스·인삼차·장수보약, 그리고 인삼주사약을 들 수있다.
비교적 큰 규모의 생산시설이 50여개 있는 개성시의 공업은 방직·편직·피복생산이 전국적 비중을 차지하고 식료·일용·임상가공 공업도 활발하다.
『해방전 1년동안 짜내던 천을 반나절도 못되어 짠다』는 방직공업은 개성방직공장·개성피복공장이 주력으로 「면살창무늬천」등 60여가지의 천을 생산, 소련등지로 수출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계가 낡은 중국제이거나 조총련에서 기증한 편직기로 외화획득이 그리 신통하지 못하며 북한의 빈약한 의류생활의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식품으로는 개성식료공장등에서 생산하는 개성간장·개성고추장이 알려져 있다. 이밖에 주요 생산시설로는▲개성금속제품공장▲개풍자동용품공장▲개성기계공장▲개성유리공장▲개성완구생산협동조합▲개성학용품생산협동조합등이 꼽힌다.
『북과 남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자』라며 북한당국이 개발에 주력한 판문군에는 판문철제일용공장·판문식품공장·판문제약공장등이 있으나 지금은 전력난의 영향아래 「교대시간 엄수」등을 강조하면서 「전기절약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의 왕도」인 개성은 최근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개최를 계기로 북한을 찾을 외국인 관광객을 맞기 위한 준비로 부산하다.
대회개막에 앞서 평양∼개성간의 고속도로 개통이 강행되고 있고 시중심부의 자남산(해발1백4m) 기슭에 6·25당시폭격을 모면한 전래기와집 20여채를 손질하여 「개선민속여관」을 만들어 놓았다.
반경 2km이내에 형성된 개성시의 중심거리는 송도거리·청년거리·통일거리등으로 불리며 주요 시설로는 하루 3천여명이 이용한다는 청년학생축전과 고대국가의 노예제적 계급관계를 보여주는 자료가 잘 정리되었다는 개성역사박물관을 들수 있다.
고도개성의 유물·유적은 익히 알려진 그대로 선죽교·개성성곽·만월대등이 즐비하며 개성∼공민왕릉, 개성∼박연폭포사이는 포장도로로 연결된다. 6·25때 소실된 개성 남대문은 54년에 복구하여 3대 명종의 하나라는 고려때의 연복사 종을 옮겨 놓았다.
이밖에 고려때 국자감이었던 성균관이 있으며 그 앞뜰의 5백년 묵은 쌍둥이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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