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 JB 홈스 느려도 너무 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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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느림보로 비난받는 JB 홈스가 지난 18일 제네시스 오픈에서 샷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느림보로 비난받는 JB 홈스가 지난 18일 제네시스 오픈에서 샷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현대 스포츠에선 종목을 가리지 않고 경기 시간을 줄이는 게 숙제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졌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려면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골프에서도 슬로 플레이를 방지하기 위해 시간을 재기 위한 샷 클락(shot clock)을 도입하는 대회가 늘어나는 추세다.

퍼트 한 번에 무려 1분 20초 #한 라운드 마치는 데 5~6시간 #“골프팬 좌절시켰다” 비난 쏟아져 #홈스는 “강풍 속 최선 다했을 뿐”

그런데 지난 18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오픈에서 우승한 JB 홈스(37·미국)는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PGA투어에서 대표적인 ‘슬로(slow) 플레이어’로 악명높은 그는 이 대회에서도 시간을 너무 끌어 슬로 플레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종 라운드에서 홈스가 속한 챔피언 조는 18개 홀을 도는데 5시간 29분이 걸렸다. 보통 4시간 30분 안에 한 라운드를 마치는 게 일반적인데 홈스는 1시간 이상 더 걸린 셈이다.

지난 18일 열린 PGA 투어 제네시스 오픈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퍼터를 들어올리며 퍼팅 라인을 읽고 있는 홈스. [AFP=연합뉴스]

지난 18일 열린 PGA 투어 제네시스 오픈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퍼터를 들어올리며 퍼팅 라인을 읽고 있는 홈스. [AFP=연합뉴스]

특히 홈스는 4번 홀에서 짧은 거리의 버디 퍼트를 하는데 1분 20초가 걸렸다. 버디에 실패한 뒤 홀에서 30cm도 안 되는 파 퍼트를 앞두고도 다시 시간을 끌었다. PGA투어는 다음 샷을 하기까지 40초를 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라운드를 포함해 이번 대회에서 홈스는 느려터진 플레이를 했는데도 한 번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최종 라운드에서 홈스와 함께 경기를 치른 애덤 스콧(호주)은 “홈스의 느린 플레이는 앞으로도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후원사나 TV 중계사가 돈을 더 못 준다고 할 때까진 늑장 플레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골프 팬들은 홈스의 슬로 플레이 영상과 함께 “퍼트를 앞두고 영원히 멈춰 선 것 같다” “그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고 싶다”는 등의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나무늘보’라고 비난하는 골프 팬도 있었다.

지난 18일 열린 PGA 투어 제네시스 오픈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퍼터를 들어올리며 퍼팅 라인을 읽고 있는 홈스. [AFP=연합뉴스]

지난 18일 열린 PGA 투어 제네시스 오픈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퍼터를 들어올리며 퍼팅 라인을 읽고 있는 홈스. [AFP=연합뉴스]

대회가 끝난 뒤에도 홈스의 슬로 플레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홈스가 PGA투어에서 5차례나 우승했지만,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호주의 나인 뉴스도 홈스를 “PGA 투어의 가장 나쁜 범죄자 중 한 명”이라고 혹평했다.

영국의 가디언도 대회가 끝난 지 사흘이 지난 21일 “홈스가 5시간 반 동안 팬과 동료 프로들을 좌절시켰다”면서 “많은 사람은 슬로 플레이가 골프의 성장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슬로 플레이가 사라지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골프가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홈스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홈스는 “처음엔 플레이가 느렸지만, 점점 빨라진 건 사실”이라고 변명했다. 홈스는 지난달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도 클럽을 고르고 두 번째 샷을 하는데 4분 10초를 끌어 비난을 받았다. 당시 홈스가 속한 챔피언 조의 경기 시간은 무려 6시간 10분이나 걸렸다.

제네시스 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홈스. [AP]

제네시스 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홈스. [AP]

홈스는 “(내 플레이가) 왜 이렇게 큰 문제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난 우승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면서 “나는 더 이상 슬로 플레이어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홈스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뒤에도 “강풍이 부는 상황에서 빠른 플레이가 가능하겠는가”라면서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바로잡아달라. 하지만 나는 결코 시간을 안 지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슬로 플레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PGA투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USA투데이는 “PGA투어에서 슬로 플레이에 대한 벌타는 1995년과 2017년 두 차례만 부과됐을 뿐”이라면서 “경기위원들이 슬로 플레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 논란은 2055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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