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애들을 어떻게 맡겨요"″학부모님들 이러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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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6일 오후3시쯤 서울대림여중 운동장. 노조결성을 주도한 분회장 한상훈 교사(35·생물)가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육성회장 장동숙씨(40·여)등 학부모 5∼6명과 마주쳤다.
학부모들은 기다렸다는 듯 한교사를 둘러싸고 『왜 교과서에도 없는 내용을 가르치느냐』 『이순신장군이 위인이 아니라면 뭐냐』는 등의 말씨름을 벌였다.
시끌시끌한 입씨름이 계속되자 교실에 있던 학생들은 유리창을 열어놓고 모여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 마디 대답하려고 하던 한교사는 입씨름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듯 교무실쪽으로 들어가 버렸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빈정대는 듯한 항의가 잇따랐다.
이 학교에 노조가 결성된 것은 14일 오전7시.
낌새를 알고 고준식교장(59)과 학부모 20여명이 13일저녁부터 교사들을 설득하며 학교에서 철야했으나 허사였다.
밤을 새운 학부모들이 서무실에 모여있는 사이 교사들이 강당에 모여 기습결성모임을 가졌던 것.
이에 앞서 13일저녁 전체77명의 교사 중 24명이 학교앞 음식점인 대림회관에 모여 노조를 결성하러던 것을 학부모 20여명이 덮쳐 겨우 막았었타.
노조결성소식이 알려지자 학부모들은 교사들에게 반감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막지 못한 고교장등 학교측에도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50여명으로 늘어난 학부모들은 그후 매일 학교에 출근하다시피하며 교사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어떤 학부모는 『강남에는 돈있고 권력있는 학부모가 많아 노조결성은 꿈도 못꾼다』면서 『당신들은 우리학교 학부모들을 우습게 보고 노조를 결성했다』며 학생들 앞에서 교사에게 거칠게 대들어 민망스럽기도 했다.
노조참여교사들이 학부모와의 대화에서 『참교육 실현을 위해서는 노조가 불가피하다』 고 말했으나 학부모들은『참교육은 노조가 아니면 안되냐』고 다그쳤다.
연일 계속되는 학부모들의 시위아닌 시위로 어수선한 분위기때문에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학부모들이 교실안까지 따라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교사나 학생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수업분위기는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15일낮 학부모들이 도서실에 모여 대책논의를 하는동안 30∼40명의 학생들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우우』하는 함성으로 야유하며 『부모들이 학교에 왜 자꾸 몰려다니느냐』고 불평하기도 했다.
『불법이지만 이미 노조가 결성됐으므로 부모님들은 뒤처리를 저에게 맡기시고 귀가해 주십시오. 학생들을 안정시키는게 급선무인데 이렇게 학교에 와 계시면 학생들마저 동요하게 됩니다.』고교장의 눈물어린 호소에 학부모들은 『의식화된 교사는 우리가 쫓아다니며 바로잡겠다』며 막무가내였지만 결국 16일밤 모두 귀가했다.
한 학부모는 4일만에 교문을 나서면서 『이런 학교에 그냥 아이를 맡겨둘 수 없다. 이젠 노조결성교사들을 더이상 「선생님」으로 대우해 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우리의 미덕은 이날 학부모나 학생 누구의 표정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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