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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부녀회 손보기'는 적반하장 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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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방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은 현재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유지할 태세다. 선거 직전, 당국은 아파트 등 집값 급등의 주범으로 부녀회를 지목하면서 이른바 '아줌마의 힘'에 맞선 일전불사(一戰不辭)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재경부 고위 관리가 강남과 수도권 일대의 아파트 호가(呼價) 담합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수단 강구 방침을 밝힌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 아줌마들의 반격이 강화되면서 양자 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아줌마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아파트 부녀회로 돌리는 처사에 항의하면서 자신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치게 된 것은 전국의 집값이 일제히 폭등한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자구책이라고 주장한다. 곧, 집값 올리기 담합이 아니라 '제값 받기 운동'이라는 것이다. '아줌마의 힘'은 더러 폭력 사태까지 동반한다는데 얼마 전 서울 송파구 소재 모 아파트 단지 부동산 중개업소는 부녀회가 통고한 평형별 시세를 어겼다는 이유로 큰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거주민이 높은 친밀도와 신뢰성을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거나 사회적 이슈에 동참하는 일은 쉽지도 흔치도 않다. 근린관계가 곧 사회자본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산업화 이후의 공공 주택정책 전반에 관련된 문제다. 대체로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력의 안정적 재생산과 계급투쟁의 사전 예방을 위해 사적 주거 영역은 요새화하고 생활공간의 사회적 공유는 최소화하였다. 말하자면 아파트 현관을 경계로 하여 가정과 세상을 절연시킨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 거주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자본의 질과 양은 단지나 평형의 크기와 모양.층고(層高) 등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것이 학계의 연구결과다. 물론 분양.임대 같은 입주 조건에 따라서도 사회자본은 달라진다. 가령 작은 평수가 많은 임대아파트일수록 사람들은 보다 친하고 가깝다. 이번 사태는 따라서 '아줌마 연대'가 대단지 중대형 아파트 소유자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고 흥미롭다. 사회적 배경으로 볼 때 평소 '이웃사촌'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의 발달이 최근 아파트 커뮤니티 형성에 끼친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저 벌집 같고 닭장 같은 아파트 주거문화에 교분과 협동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그나마 구축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동산 전문 포털 가운데 어떤 곳은 2300여 개의 커뮤니티를 갖고 있으며 별도의 인터넷 주소(URL)를 가진 커뮤니티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 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는 관공서를 상대로 민원을 해결하기도 하고 병원이나 상가를 대상으로 서비스 개선과 가격 인하를 쟁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 근래 아줌마들이 주도하는 아파트 사회자본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오프라인 조직화와 병행하고 있으며, 순수한 자발적 참여라기보다 강제적 동원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만큼 신뢰와 호혜의 바탕 위에 소속감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사회자본의 본래 성격이나 목적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건전한 시민의식의 발로라기보다 동질적 사회계층의 집단이기주의에 가까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자본의 오용(誤用)과 일탈에 대해 최소한 집권 정부.여당은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그것의 일차적 원인은 합리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작금의 부동산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아줌마의 힘'에 대해 손볼 생각만 계속하고 있다면 이는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과 다름없다. 무능한 정치는 사회를 흐리게 만들고 오만한 권력은 민심을 거칠게 만들 뿐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