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아버지 부시'가 김정일 만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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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은 왜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려 하는가. 미사일을 발사대에 올려놓은 저의는 무엇인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6일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모른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불투명한 사회인 북한이 의도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이 모른다고 한 건 엄살일까. 아닐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여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AP통신은 23일 "세계는 북한의 의도, 미사일의 성능 등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발사하려 한다는 점 외엔 대부분 추측의 영역"이라고 했다. AP는 미 군사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미국은 심지어 미사일 발사에 쓰일 연료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같은 날 "위성으로 포착한 것도 결정적 증거라고 판정하지 못하는 게 미국의 대북 정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침묵, 서방의 정보 부재로 발생하는 건 추측의 난무다. 대포동 2호의 사거리가 정말 얼마인지, 그 머리엔 무엇이 실릴 것인지, 미사일 연료는 과연 주입됐는지 등에 대해 헷갈리는 관측만 무성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하긴 쉽지 않다.

미국이 실마리를 풀려면 부시 대통령이 궁금해 하는 것처럼 북한의 속마음부터 파악해야 한다. "북한이 노리는 건 미국과의 직접 대화"라는 짐작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의 흉중을 좀 더 깊이 있게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북한과 접촉을 하는 게 상책이다. 북한도 대화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직접 대화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나쁜 행동에 대해선 어떤 보상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허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치 상태는 지속되고, 한반도 주변엔 불안만 증폭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미사일 기지 선제공격론을 일축하고 "외교로 푼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의 중재에만 의탁하는 듯한 모양새로 과연 외교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이 머리를 쓴다면 원칙도 지키고, 외교력도 발휘하는 길을 못 찾을 리 없다.

예컨대 '아버지 부시'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건 어떨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특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북, 김일성을 만나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했듯이 말이다. '아버지 부시'가 개인 자격으로 평양에 갈 경우 미국은 "직접 대화 형식이 아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북한이 초청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가 평양에 가는 것과 다르다. 당국자인 힐이 가면 직접 대화를 하는 게 되고, 바로 그점 때문에 그의 방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 세계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김정일의 생각이다. 그의 뱃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해법을 찾는 건 '맥도 모르고 침통(鍼筒)을 흔드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HW 부시가 북한에 간다면 김정일은 내심 반길지 모른다. 자신의 격이 올라갈 뿐 아니라 미국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만남이 이뤄진다면 국면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미사일뿐 아니라 핵 문제의 숨통도 트일 수 있다. 6자회담 트랙으로 북한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전망이 불투명하더라도 미국으로선 '아버지 부시'의 방북을 시도해 볼 만하다. 그게 외교다운 외교고, 주도권을 쥐는 길이다.

이상일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