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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의 골프이야기] “난 좌익 싫어 골프 쳐도 훅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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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가 해외 여행 중에 즐긴 골프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그가 미국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다. 어느날 일정에도 없이 시간을 내 고(故) 존 F 케네디 생가를 찾기로 했다. 하지만 갑자가 방문하는 바람에 여의치 않아 그의 생가를 직접 둘러보지는 못했다.

먼발치에서만 보고 되돌아 나와야 했다. 케네디 생가 방문을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은 인근 골프장에 가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케네디 생가 근처에는 정말 멋있는 골프장이 있었다.

JP는 아직도 그의 추억 속에 ‘하이아니스 골프장’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골프장도 역시 예약하지 않고 불쑥 찾아간 탓에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다른 사람의 예약이 취소돼 빈 자리가 나와야 칠 수 있는 이른바 ‘대기 순번’이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원칙이 잘 지켜지는 사회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회가 동등하다.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기회의 평등’ 원칙을 어기지는 못한다. 특히 고급 골프장 등에서는 이런 원칙이 더 철저하게 지켜진다. 물론 일행 중 장애인 등이 있을 때는 최우선적으로 서로 양보해 주는 문화다.

JP가 아무리 한국에서 고관대작이라도 미국땅에서까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행은 한참을 더 클럽하우스에서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언제 플레이를 시작할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는 게 골프장 측의 반복된 설명이다.

그런데 당시 일행 중에는 총영사도 끼여 있었다. 그 골프장에서는 이른바 ‘한국의 총영사 빽’도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감해 하던 총영사에게 JP가 귀띔을 해줬다.

“여보게. 미국이 아무리 원칙대로 한다고 해도 아마 팁은 통할걸세. 더도 말고 적당히 집어줘 보게 아마도 효력이 있을걸세.”

총영사는 JP의 귀띔대로 경기 진행 마스터에게 슬그머니 얼마를 집어줬다고 한다. 돈의 효력은 역시 컸다. 골프장 직원은 잠시 뒤 ‘빈 자리가 났으니 이제 치셔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JP는 그날 골프를 치면서 일행에게 “그것 보게나. 미국도 돈의 효력이 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웃으면서 회고했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이런 솔직한 얘기를 꺼내놓기는 쉽지 않다.

일부에서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굳이 이런 뒷얘기를 들려주는 이유가 있다. JP는 우리 민족성을 보면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 잘못된 사고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극히 차별된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나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골프도 원칙을 잘 지켜야 하는 운동이다. 누가 보건 말건 스스로 규칙을 준수하는 신사운동인 셈이다. 그런데도 예외적으로 서로 눈을 감아주는 일이 있다.
바로 멀리건이다. 멀리건이란 티오프 때 공을 잘못 쳤을 경우 한 번 더 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것이다.

JP는 골프의 구력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요즘 멀리건을 받을 일은 거의 없다.
그가 티오프 할 때를 지켜보면 드라이버로 친 공이 반듯하게 하늘을 가르면서 나간다. 어쩌다가 공이 휘어진다 싶으면 반드시 오른쪽으로 약간 휘는 정도의 슬라이스만이 있을 뿐이다.

JP의 말이 재미있다.
“나는 좌익이 너무 싫어요. 그래서 공을 쳐도 언제나 슬라이스(공이 오른쪽으로 휘어 날아가는 것)를 내죠. 절대로 훅(왼쪽으로 휘어 날아가는 것)은 안 내요.”

실제로 그는 기자와 골프를 치는 동안 훅을 한 번도 내지 않았다. 동행한 다른 사람이 훅을 낼 때마다 “내 공은 잘못 쳐도 오른쪽으로 가는데, 여기는 왜 훅일까”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골프는 머리로 치는 운동”이라고도 정의했다. 즉, 생각하면서 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머릿속이 좌익이면 골프공도 왼쪽으로 가고(훅), 머릿속이 우익이면 골프공도 오른쪽으로 간다(슬라이스)는 얘기다. 묘하지. 허허….”

JP는 이 대목에서 잠시 고 박정희 대통령을 회고했다.
“박 대통령은 정확하신 분이었는데… 그와 함께 라운드할 때 보면 18홀 내내 공을 반듯하게 맞히는 스타일이었어요.
농담 한마디 하면 박 대통령은 선탠 크림을 많이 발랐어요. (피부가 까무잡잡해) 바르나 마나였는데도 그랬어요. (웃음) 나는 이렇게 긴팔 티셔츠를 입고, 양손에는 장갑을 꼭 끼고 골프를 해요. 손등이 까맣게 타면 남들이 ‘만날 골프만 치는 자’라고 쑥덕거려서 그래요.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서 오른쪽 손에도 장갑을 끼고 치는 거지요.”

기자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박 대통령과 같이 JP도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스타일이었다. 공이 빗나가는 일이 거의 없어 멀리건을 받을 일이 없다. 슬라이스를 낸다고 그는 말했지만 사실은 반듯했다.
그는 요즘 공의 비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주 말한다. 나이를 먹다 보니 공이 멀리 안 나간다고 불평을 했다(젊었을 때는 드라이버로 250야드 이상을 날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골프 비거리를 좀 더 내보겠다는 욕심은 아직도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티오프를 한 뒤 양해를 구하고 한 번 더 치기도 했다. 이른바 ‘JP 멀리건’인 셈이다.
뒤팀이 멀리 있으면 어떤 때는 헌 공을 꺼내서 몇 개를 필드에서 연습하듯 연거푸 치고 나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햐아-, 거리가, 거리가… 영…” 하는 아쉬움의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런 뒤 그는 미국 빌 클린턴의 골프 얘기를 소개했다.

“‘빌리건’이라고 아세요. 클린턴과 멀리건의 합성어죠. 클린턴은 마음에 들 때까지 몇 개든 치고서야 걷기 시작한다고 해요. 그래서 빌리건이란 별명이 붙었지요.” 그는 클린턴의 골프 매너 얘기를 하면서 사뭇 즐거워 했다. JP는 “나이를 먹은 뒤로는 골프 매너나 에티켓 등을 별로 따지지 않게 됐다”고 한다.

“어떤 노인네를 보면 골프 매너를 참 엄격하게 따져요. 그렇게 피곤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에요. 나이가 들면 골프는 그저 즐겨야 해요. 늙어서까지 대쪽같이 원칙과 규칙만을 따지다 보면 허리 다치기가 일쑤지요. 노인들은 뼈가 굳거든요. 나는 지금 아이언을 별로 치지 않아요. 더구나 공이 벙커에 들어가면 그냥 꺼내서 치죠. 오래전에 벙커에서 공을 치다가 허리를 다친 뒤로는 그런 곳에서는 플레이를 하지 않죠. 삶이라는 게 다 그래요.”

사실 그는 우드와 6, 7, 8, 9,10,11번 아이언으로 라운드를 하고 있다. JP는 규칙대로 골프를 친다기보다 잔디밭에서 인생을 즐기는 듯했다.
“골프는 슬로예요. 플레이할 때만 빨리 하는 거고요.”
그는 ‘Slow golf Play fast!’라고 했다.
한편 그는 ‘퍼팅론’을 펴기도 한다.

“퍼팅을 할 때는 라인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즉각 쳐야 해요. 잘해보겠다고 좀 더, 좀 더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흐트러지죠. 맨 처음에 읽은 라인이 정확한 거예요. 또 퍼팅은 거리를 짧게 치면 안 돼요. 공이 홀을 지나가게 쳐야 들어가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일본 후지산 산록에 있는 어느 골프장에는 현관 입구에 ‘지나치게 꼬누면 안 들어간다’고 하는 격언이 걸려있더라고요.”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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