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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화웨이 갈등 그 뒤엔…12조 달러 5G 선점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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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중 경제 패권 뜨거운 전장②

지난해 2월 세계 최대 통신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화웨이가 5G(5세대) 기술을 선보이는 디스플레이를 전시했다. 5G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핵심 분야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2월 세계 최대 통신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화웨이가 5G(5세대) 기술을 선보이는 디스플레이를 전시했다. 5G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핵심 분야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르헨티나에서 정상회담을 할 때, 캐나다 밴쿠버공항에서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대한 체포 작전이 진행됐다.

국제기술 표준 되면 시장 장악 #5G 기술은 중국이 미국에 앞서 #미국, 영국·호주 등과 5G 동맹 #자국기업엔 중국 장비 금지 추진

지난해 7월 미·중 무역전쟁 시작 후 5개월 만에 양국 정상이 처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날, 미국이 5세대(5G) 이동통신의 상징 기업인 화웨이를 친 것이다. 지난달 미 정부는 화웨이와 멍 부회장을 금융사기 및 기술절취 등 13개 혐의로 기소했다.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기업의 중국산 통신장비 구매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워싱턴에서 나온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오는 2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통신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이전에 서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미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화웨이 사용 금지령을 내린 데서 한발 더 나아간 조치다. 지난해 4월에는 대북 및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중국 통신장비업체 중싱통신(ZTE)에 대해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 금지라는 제재를 부과했다.

미국이 중국산 상품에 전방위로 고율 관세를 매기는 무역전쟁 국면에서 별도의 제재를 부과한 두 기업, 화웨이와 ZTE는 중국의 5G 기술 선두주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며, ZTE는 세계 시장점유율 4~5위권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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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히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첨단 기술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미·중 신냉전이다. 갈등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분야가 5G 기술이다.

기존 정보통신기술(ICT)과 달리 통신 속도, 데이터 용량,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한데 결합하면서 미래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근원적 기술이기 때문이다. 모든 미래 기술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양국이 경제·군사적 측면의 국가 능력을 설정하는 경쟁에서 주요 타깃이 됐다.

5G 기술은 기존보다 속도와 데이터 용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기존 4G보다 속도는 20배 빨라지고, 통신 지연은 10배 짧아지며, 연결 기기는 10배 많아지는 초연결성이 특징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5G 요건으로 최대 다운로드 속도 20Gbps, 최저 다운로드 속도 100Mbps, 전송지연시간 1ms, 1㎢ 반경 내 사물인터넷(IoT) 기기 100만 개 동시 연결을 꼽는다.

5G가 구현돼야 자율주행차와 AI, 가상·증강 현실 등 데이터 용량이 큰 미래 산업에 최적의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수많은 기기가 네트워크에 접속해 신호와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 스마트 시티, 스마트 팩토리 등 사물인터넷(IoT)을 가능하게 한다. 5G는 기술 그 자체보다 5G가 보여줄 미래에 주목하는 이유다.

미·중 정상도 5G 기술을 국가 의제로 설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핵심 추진과제이자 중국이 추진하는 10대 핵심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향후 5G 네트워크,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발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2020년 5G 상용화, 2030년 5G 세계 최강국 도약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신년 국정 연설에서 “미래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를 위해 의회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히며 5G를 포함한 첨단기술산업 패권 추구를 선언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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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심은 5G 국제 기술표준 선점이다. 누가 5G 모델과 설계를 규정하고 통제하느냐를 둘러싸고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내년 상반기 최종 표준을 채택할 예정인데, 중국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표준으로 선정되면 시장을 리드하고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기술표준의 승자가 약 12조 달러(약 1경 3512조원)로 추산되는 미래 5G 이동통신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예상한다.

예컨대 퀄컴은 이동 통신분야 표준 선점을 통해 10억대 이상의 정보통신 기기에 자사 칩을 공급하고 있다. 완제품 가격의 2.5~5%를 수수료로 가져가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현재까지 5G 기술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섰다. 화웨이는 에릭슨, 노키아와 함께 통신장비 산업 3강 구도를 만들었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기술경쟁력을 높여 1위에 올랐다.

통신장비 업체 세계 시장점유율은 화웨이(28%)와 ZTE(7.8%)가 미국 시스코(8.3%)보다 높다. 중국정보통신연구원에 따르면 5G 휴대전화 특허 건수는 화웨이(17%)와 ZTE(9%)가 미국 퀄컴(10%)과 인텔(5%)보다 많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은 2020년 4G·5G 복합 운영 체제(NSA)를 운영한 뒤 2025년 5G 독자 운영 체제(SA)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올해 NSA 체제를 운영한 뒤 내년 곧바로 SA 체제로 들어간다. NSA에서 SA로 옮겨가는 데 중국은 1년, 미국은 5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5G 기술개발 선두에 선 계기는 신성장 동력을 찾고자 하는 국가전략과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하는 대규모 펀딩, 국내외 유능한 중국계 연구자 영입 그리고 중국 특유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기인한다.

중국은 앞으로 자국의 5G 관련 영향력 확산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우방국 및 인접국에 5G 관련 경제·기술적 영향력 전파를 시도할 것이고, 이를 미국이 견제하면서 미·중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

미국 역시 5G 동맹을 추구하고 있다. 통신장비에 도청 혹은 정보수집이 가능한 백도어 설치 가능성을 제기하며 호주·뉴질랜드·영국·폴란드 등 우방국에 화웨이 장비 배제를 강요하고 있는 터라 세계가 5G 기술을 둘러싸고 양분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5G 기술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못지않게 5G 기술을 개발해왔으며, 지난해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는 5G 시범망 구축을 통해 관련 서비스를 제공했다. 장영태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원은 “사드 사태와 같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 상황에 놓일 것에 대비해 입장을 확실하게 정립함으로써 도전요인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공동기획: 여시재·성균중국연구소·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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