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경제 벼랑에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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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안경업체들의 수출액은 지난해 1억7천5백만달러에서 올해는 1억4천만달러로 20% 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이뿐 아니라 싼 값(국산의 60% 수준)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대만산에 국내시장마저 잠식당하고 있다.

이 지역 70여개 안경업체의 모임인 광학공업협동조합 박희중(63)전무는 "중국은 인건비가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한 데다 정부가 안경테 재료인 티타늄 원광석까지 자국 업체들에 싸게 공급해 더 이상 가격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 경제를 이끌어온 섬유에 이어 안경 산업까지 동반 불황에 허덕이면서 지역 경기도 썰렁하다. 이곳 동아백화점의 이인중 회장은 "경기가 지금도 안 좋지만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산 녹산공단에 있는 신발업체인 신세형화성은 태풍 '매미'로 인한 5억원 규모의 공장.창고.제품 파손 피해를 아직도 완전히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화물연대 운송거부 등으로 인해 1억8천여만원의 손실을 본 상황이었다.

회사 측은 "가뜩이나 경기부진으로 올 매출목표(1백50억원)를 낮게 잡았는데 이조차 달성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광주 하남공단에선 부도 등으로 사장이 잠적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작기계 생산업체인 남선하이테크의 남재술 사장은 "많게는 한달에 4~5곳에 이른다"며 "발빠른 업체들은 진작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옮길 여력이 없는 업체는 남아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 경제가 벼랑 끝에 섰다. 돈도, 인력도, 정부의 지원도 없는 가운데 최근 수년 동안 경기가 갈수록 위축돼 온 데다 올해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태풍 ▶잦은 노사분규▶화물연대 사태 등으로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들어 지방의 각종 경제지표는 서울보다도 훨씬 더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대전.울산 등 주요 지방 대도시의 경우 지난 7월 중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감소율을 보였다. 서울은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6.3%에 그쳤다. 수도권인 경기(3.2%)와 인천(1.5%)은 오히려 증가했다.

특히 일부 지방 기업은 치솟는 인건비 부담과 노사 분규.정부 규제 등을 견디지 못하고 중국.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해 '지방 공동화(空洞化) 현상'까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올해 경기는 건국 이래 최악"(이종대 포항시 인쇄백화점 사장), "획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이용표 중소기업협동조합 대전.충남지회장) 등 지방 기업인들의 절규가 잇따르고 있다. 지역.업종에 관계없이 지속되는 불황에 기업 의욕을 급속히 잃고 있는 것이다.

김시래.염태정 기자, 전국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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