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중 「강경」-「신중」틈서 고심|방려지 체포 영장…미·중 밀월에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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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경새 기미로부터 상당한 악화 단계로 전환될 것 같다. 학생 시위에 대한 북경 당국의 무력 진압으로 동요돼온 양국 관계는 중국이 지방 도시로까지 검거 선풍을 확대하고, 특히 미 대사관에 피신한 재야 인사 「팡리즈」 (방려지)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급하기에 이름으로써 심각한 대립 상태로 돌입하고 있다.
지난 주말 「부시」 대통령의 기자 회견 때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시위 진압의 잔혹성에 비추어 볼 때 중국 지도부에 대해 상당히 온건한 반응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학생들의 민주화 열망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비록 붙이기는 했지만 미중 관계 유지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온건한 반응>
무력 진압은 비판하면서도 중국 지도부를 자극시키지 않으려는 어중간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심지어 행방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 학살은 「덩샤오핑」 (등소평)이 주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주말 사태를 고비로 미 행정부의 반응은 바뀌고 있다. 방려지의 미 대사관 피신 사태가 분명 미국에도 당혹스런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미국도 그를 내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중국측에 단호히 맞서고 있다. 「말린·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 당국의 무력 진압에 대해 「살인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 『양국 관계가 조만간 정상화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고 국무성도 두 나라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 같은 대 중국 비난 발언과 아울러 현재까지 실질적인 제재 조치로는 군사 판매 중지를 내놓았을 뿐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추가 제재는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미 전문가들은 군사 판매 중지가 중국에 현실적인 타격을 주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제품 및 기술 판매의 중단이 보다 강력한 제재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동원하기에는 「부시」측에 한계가 있다. 우선 「부시」 표현대로 기술 공여 등의 중단은 중국 국민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 되고, 사태가 수습된 후 미중 관계를 정상화시키는데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 실질적인 타격을 주저하는 더욱 절실한 이유는 소련에 대한 고려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너무 악화시키면 북경은 대소 관계로 이를 보완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대 서방 관계가 나빠지면 자연히 소련 블록과의 경제 협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최근 「고르바초프」가 북경을 방문, 소중 정상 회담을 실현시키고 관계를 정상화시킨 마당에 미중 관계를 크게 냉각시킨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위험한 처신인 셈이다.

<이붕 등 소와 우호적>
72년 「닉슨」의 북경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를 빠른 속도로 발전시켜온 미국의 대중 정책은 소련에 대한 견제 전략을 바탕으로 해왔고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련·중국이 이데올로기 싸움을 벌이는 틈바구니를 활용, 미국은 소련에 대해 이른바 중국 카드를 이용해왔고 지금도 중국 국경에 미국은 소련 감시 통신망을 깔아놓고 있다.
최근 북경 사태 처리와 관련해 중국에 대해 어디까지 반응을 보여야 하느냐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어려운 과제인 셈이다. 미 의회, 특히 민주당은 중국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요구, 심지어 대사 소환도 주장한다. 강경 조치를 내세우는 측은 북경 당국이 소련으로 기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련이 중국에 줄 것이 적을 뿐 아니라 소련 자신도 동맹 체제의 동요를 겪고 있다는 현실 등을 지적한다.
그러나 신중론자들은 소중 관계 개선 가능성을 우려한다. 우선 소련이 미소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한 대 중국 관계의 개선, 특히 경제 협력 등을 희망할 것으로 이들은 전망한다.
중국도 등소평은 소련에 대해 경계하는 입장이지만 그 아래 「리펑」 (이붕) 「양상쿤」 (양상곤) 「리셴녠」 (이선념) 등은 소련에서 교육을 받았고 모스크바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강경파의 장악으로 대내 탄압과 대외 개방 위축으로 치닫는 한편 미국의 비판이 고조됨으로써 미중 관계는 단기적으로 시련이 예상된다. 그러나 미 정부로서는 장기적인 양국 관계 및 소련을 의식한 지정학적 고려 등으로 계속 북경에 대한 자세에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투자·학생 교류·관광·과학 기술 교류·군사 협력 등 상당 부분의 민간 및 정부관계에 있어 후퇴가 있을것으로 미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교류·투자 축소 예상>
현재 미국은 4백여개 업체가 합작 형태로 중국에 투자, 그 액수가 20억 달러에 이르고 4만명의 중국 학생을 받아들이고 있고 연간 30만명의 관광객을 중국에 들여보내고 있다.
최근의 중국 사태가 미국 입김과 미 유학생 등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학생 교류를 축소할 것이며 미국은 상황이 안정되는 상당 기간 동안 투자 등을 재고하는 등 협력 관계의 후퇴가 내다보인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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