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타고 번진 불…을지로 화재에 상인들, "이렇게 많이 탈 줄 몰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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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12시 39분 서울 을지로 4가 한 아크릴가게에서 화재가 발생해 인근 가게 6∼7곳을 태우고 꺼졌다. 이번 화재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진화를 위해 을지로 일대가 2시간 정도 통제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을지로 아크릴 가게 화재가 나자 서울 중구청에서 주민들에게 보낸 안내 문자. 김정연 기자

을지로 아크릴 가게 화재가 나자 서울 중구청에서 주민들에게 보낸 안내 문자. 김정연 기자

"펑 소리 나고 불길 번져"

12시 39분 처음 신고가 들어왔지만 오후 2시가 넘어서야 큰 불길이 잡혔다. 이날 지하철 을지로4가역 내부에도 탄 냄새가 가득했고, 시민들은 화재 지점 주변에서 현장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타일가게를 운영하는 서모(37)씨는 "옆 가게가 시끄럽길래 싸우는 소리인가 했는데 12시 50분쯤 크게 '뻥'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근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최경열씨도 "아크릴 상가에서 '악'하는 소리 들리고, 바로 2층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근처에 볼일을 보러 나왔다는 최선웅(75)씨는 "여기는 불 크게 나려면 엄청나게 크게 날텐데 그래도 잡혀서 다행"이라고 했다. 인근에서 철물 제조업을 하는 최모 사장도 "첨에 불은 작아 보였는데 확 퍼지더라. 연기가 골목에 시커멓게 들어오니까 다들 도망 나갔다"고 전했다.

"어디서 불이 그렇게 번진 건지 모르겠다"

14일 화재가 발생한 을지로 한 아크릴 가게. 김정연 기자

14일 화재가 발생한 을지로 한 아크릴 가게. 김정연 기자

소방 당국은 “아크릴 레이저 절단 작업 중 아크릴 찌꺼기를 제거하는 장비(일명 자바라)에서 불꽃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근에서 만난 상인들도 '이렇게 불이 커질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인근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기계도 다 쇳덩어리고, 아크릴판에 불이 붙으려면 오래 걸리고, 불붙을 데는 가루밖에 없는데 저 가게 사장은 바닥이 반들반들하게 유지하는 사람이다. 어디서 불이 그렇게 번진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동 아크릴 절단기계를 작동시켜 놓고 잠깐 다른 일 하다가 못 본 건가" 추측하는 상인도 있었다.

화재 당시 가장 처음 현장을 발견하고 진화에 나섰던 옆 가게 이모 사장은 "일단 신고를 하고 소화기로 끄는데, 소방차가 오기 전에 4-5명이 달려들어 소화기 6∼7개를 썼는데도 안 잡혔다"며 "아크릴이 연기가 많이 난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더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번지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불탄 가게들, 사실상 연결된 '한 공간'

14일 발생한 을지로 상가 화재는 지붕아래 공간을 타고 옆 가게들로 번졌다. 천장부터 탄 인근 한 가게 내부 모습. 이우림 기자

14일 발생한 을지로 상가 화재는 지붕아래 공간을 타고 옆 가게들로 번졌다. 천장부터 탄 인근 한 가게 내부 모습. 이우림 기자

화재로 불탄 가게들이 안쪽으로는 다 연결돼 있었다는 말도 있었다. 인근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김모(49) 사장은 "예상보다 너무 많이 탔다. 옆집 정도 번지고 꺼질 줄 알았는데 안을 다 태웠다"라며 "안쪽에 공간을 넓게 쓰려고 가게들이 이어져 있어서 불이 더 빨리 넓게 번졌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철물점의 이성식(46)씨는 "철물점 뒤쪽으로 다른 가게랑 연결되기도 했고, 지붕을 타고 불이 퍼지기도 했다. 우리 가게도 2층은 거의 다 탔다"고 말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지붕 위에 질기고 두꺼운 천이 덮여있어 소화액이 닿지 않았다. 안쪽에서 불이 번진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불은 오후 2시 46분에서야 완전히 꺼졌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 한편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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