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응원 문화 2030에 물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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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남녀 대학생 3명과 회사원 2명이 26일 본사에서 만나 월드컵 거리응원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당시의 감정을 털어놓고 있다. 왼쪽부터 김혜자(34.여), 조한진(22), 이창구(31), 전성제(28), 이승은(21.여)씨. 조용철 기자

월드컵 길거리 응원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평범한 시민.학생이 광장으로 몰려나가 함께 어울리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창출했다. 축구의 재미, 춤과 노래의 흥겨움, '너와 나의 하나되기'가 어우러진 한마당이자 축제였다. 과거 특정 목적을 띤 축제와는 달랐다. 누구의 권유나 강요도 없이 자발적이었다. 경기의 승패도 중요했다. 하지만 광장의 축제가 주는 감동과 대동(大同)이 더 소중했다. 왜 그들은 광장에 나갔을까. 20, 30대 학생.직장인에게서 거리응원에 동참한 동기와 이유를 들어 봤다.

◆ 거리응원에 참여한 이유

이승은=기말시험을 망치더라도 거리응원을 꼭 해야겠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내 경우 시험 끝나고 기분 좋게 놀기 위해 참가했다. 기본적으로 친구들과 같이 모여 즐기기 위해서였다.

김혜자=개인적으로 축구를 무척 좋아한다. 축구는 TV로 시청하는 것과 경기장에서 관전하는 것이 다르다. 이번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렸기 때문에 아쉬우나마 거리응원을 선택했다.

전성제=2002년 월드컵 때 거리응원의 맛을 알게 됐다. 돈 안 내고 공짜로 즐길 수 있는 한국 최고의 축제다. 안 즐기면 손해다. 다 같이 노래 부르고, 모션을 취하고, 간절히 결과를 바라는 것 자체가 기분 좋다.

이창구=승패를 떠나 하나의 축제다. 경기만 생각했다면 10시간 넘도록 야외에서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빨간 옷 입고, 빨간 모자 쓰고, 빨간 수건 들고, 페이스 페인팅 하는 게 즐겁다. 평소 절대 못 해봤던 것들이다.

조한진=2002년엔 고3이라 제대로 거리응원을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4년 동안 많이 기대했다. 우리나라엔 딱히 축제라고 할 만한 게 없다.

◆ 거리응원의 매력

이승은=집에서 경기를 TV 시청하면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부둥켜 안으며 같이 즐거워할 수 없다.

이창구=내가 붉은 악마 티셔츠로 갈아 입고 거리응원에 나가는 모습을 보고 회사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러나 거리응원이 그들을 주변인으로, 나를 이번 월드컵의 참여자로 갈라놓았다.

김혜자=거리응원은 내가 원하니까 가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같은 이유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거리 응원의 장점이다.

전성제=참여와 관망의 차이다. 축제를 보는 것과 참가하는 것은 다르다. 직접 경기장에 가서 뛰거나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거리응원은 실질적인 참여다.

조한진=거리응원은 승패보다는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승리만 바란다면 집에서 편하게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친구들과 발품을 팔 이유가 없다.

◆ 2002년과 올해 거리응원의 비교

이승은=2002년보다 올해 일부의 일탈행위가 심했다. 토고전 끝난 뒤 쓰레기 치우는 사람도 없었고, 사람들이 차 위에 올라가 뛰었다. 이겼으니까 기분이 좋고, 내가 기분 좋으니 이런 날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창구=내가 보기엔 큰 문제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가 평화스럽게 헤어지는 경우는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다.

김혜자=여성들의 옷차림이 상당히 대담해졌다. 특히 젊은 여성의 옷이 상당히 짧아졌다. 2002년 거리응원은 붉은 악마가 주축이었기 때문에 응원방식이나 응원도구도 붉은 악마 중심이었다. 그러나 올해엔 일반 시민이 많아서 그런지 복장이 눈에 확 띄었다.

조한진=축구에 대한 상식과 지식이 많이 일반화됐다. 축구에 관심없던 여성들도 축구를 더 많이 알게 됐다.

전성제=2002년보다 일탈행위가 줄었다. 그땐 모든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라 티가 안 났을 뿐이다. 또 그런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올해 일부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했으니 다음 월드컵 때는 바뀔 것이다. 이게 외국의 훌리건과 우리 붉은 악마의 차이점이다.

◆ 거리응원 장소마다 차이점은

이승은=서울광장.광화문.상암동 등지와 신촌.압구정동 등지의 거리응원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신촌 등지에선 밤새 술 마시고 일탈행위가 심한 편이었다.

김혜자=상암구장은 좌석도 있고, 화장실 가기도 편했고, 전광판도 좋았다. 또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면 소리가 울려 퍼져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전성제=서울광장과 상암구장 두 군데 다 가봤다. 서울광장 쪽이 불편했지만 재미는 더 했다. 좋은 자리라도 차지하려면 10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재미는 기다리는 시간과 참여 의지에 비례한다.

조한진=서울광장 바깥쪽에서 거리응원을 하다 보면 경기 화면만 보이고 해설이 안 들린다. 응원소리만 들리거나 어떤 곳에선 화면보다 소리가 늦기도 했다.

이창구=이번 월드컵 경기는 새벽에 열렸기 때문에 상암구장보다 서울광장이 더 좋았다. 상암구장은 의자에 앉기 때문에 3~4시간 이상을 버티기 힘들다.

◆ 상업화 논란

조한진=한동안 TV만 켜면 월드컵 얘기가 나왔다. 비싼 중계료 때문에 광고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익이라는 방송 본연의 자세를 떠나 노골적으로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이 안 좋았다.

이창구=상업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위해 시설을 설치하고, 준비를 하려면 돈이 드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 가수들이 공연을 하니 10시간 넘도록 지루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전성제=길을 가다, TV를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어디에서나 '모이자'라는 광고만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간다는 자발성은 있지만, 약간 개운치 않았다. 괜히 누가 시킨 것 같았다.

김혜자=상암구장에선 일부 기업이 경품추첨을 했다. 2002년엔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승은=2002년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응원가를 불렀다. 올해는 수많은 응원가가 나왔다. 대부분 상업성을 노려 만든 것들이었다. 그래도 가장 많이 불린 응원가는 2002년 것이었다. 한국이 16강을 탈락하자 한 번에 광고판이 철수한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

정리=이철재.권호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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