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대학생 3명과 회사원 2명이 26일 본사에서 만나 월드컵 거리응원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당시의 감정을 털어놓고 있다. 왼쪽부터 김혜자(34.여), 조한진(22), 이창구(31), 전성제(28), 이승은(21.여)씨. 조용철 기자
◆ 거리응원에 참여한 이유
이승은=기말시험을 망치더라도 거리응원을 꼭 해야겠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내 경우 시험 끝나고 기분 좋게 놀기 위해 참가했다. 기본적으로 친구들과 같이 모여 즐기기 위해서였다.
김혜자=개인적으로 축구를 무척 좋아한다. 축구는 TV로 시청하는 것과 경기장에서 관전하는 것이 다르다. 이번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렸기 때문에 아쉬우나마 거리응원을 선택했다.
전성제=2002년 월드컵 때 거리응원의 맛을 알게 됐다. 돈 안 내고 공짜로 즐길 수 있는 한국 최고의 축제다. 안 즐기면 손해다. 다 같이 노래 부르고, 모션을 취하고, 간절히 결과를 바라는 것 자체가 기분 좋다.
이창구=승패를 떠나 하나의 축제다. 경기만 생각했다면 10시간 넘도록 야외에서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빨간 옷 입고, 빨간 모자 쓰고, 빨간 수건 들고, 페이스 페인팅 하는 게 즐겁다. 평소 절대 못 해봤던 것들이다.
조한진=2002년엔 고3이라 제대로 거리응원을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4년 동안 많이 기대했다. 우리나라엔 딱히 축제라고 할 만한 게 없다.
◆ 거리응원의 매력
이승은=집에서 경기를 TV 시청하면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부둥켜 안으며 같이 즐거워할 수 없다.
이창구=내가 붉은 악마 티셔츠로 갈아 입고 거리응원에 나가는 모습을 보고 회사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러나 거리응원이 그들을 주변인으로, 나를 이번 월드컵의 참여자로 갈라놓았다.
김혜자=거리응원은 내가 원하니까 가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같은 이유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거리 응원의 장점이다.
전성제=참여와 관망의 차이다. 축제를 보는 것과 참가하는 것은 다르다. 직접 경기장에 가서 뛰거나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거리응원은 실질적인 참여다.
조한진=거리응원은 승패보다는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승리만 바란다면 집에서 편하게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친구들과 발품을 팔 이유가 없다.
◆ 2002년과 올해 거리응원의 비교
이승은=2002년보다 올해 일부의 일탈행위가 심했다. 토고전 끝난 뒤 쓰레기 치우는 사람도 없었고, 사람들이 차 위에 올라가 뛰었다. 이겼으니까 기분이 좋고, 내가 기분 좋으니 이런 날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창구=내가 보기엔 큰 문제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가 평화스럽게 헤어지는 경우는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다.
김혜자=여성들의 옷차림이 상당히 대담해졌다. 특히 젊은 여성의 옷이 상당히 짧아졌다. 2002년 거리응원은 붉은 악마가 주축이었기 때문에 응원방식이나 응원도구도 붉은 악마 중심이었다. 그러나 올해엔 일반 시민이 많아서 그런지 복장이 눈에 확 띄었다.
조한진=축구에 대한 상식과 지식이 많이 일반화됐다. 축구에 관심없던 여성들도 축구를 더 많이 알게 됐다.
전성제=2002년보다 일탈행위가 줄었다. 그땐 모든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라 티가 안 났을 뿐이다. 또 그런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올해 일부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했으니 다음 월드컵 때는 바뀔 것이다. 이게 외국의 훌리건과 우리 붉은 악마의 차이점이다.
◆ 거리응원 장소마다 차이점은
이승은=서울광장.광화문.상암동 등지와 신촌.압구정동 등지의 거리응원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신촌 등지에선 밤새 술 마시고 일탈행위가 심한 편이었다.
김혜자=상암구장은 좌석도 있고, 화장실 가기도 편했고, 전광판도 좋았다. 또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면 소리가 울려 퍼져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전성제=서울광장과 상암구장 두 군데 다 가봤다. 서울광장 쪽이 불편했지만 재미는 더 했다. 좋은 자리라도 차지하려면 10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재미는 기다리는 시간과 참여 의지에 비례한다.
조한진=서울광장 바깥쪽에서 거리응원을 하다 보면 경기 화면만 보이고 해설이 안 들린다. 응원소리만 들리거나 어떤 곳에선 화면보다 소리가 늦기도 했다.
이창구=이번 월드컵 경기는 새벽에 열렸기 때문에 상암구장보다 서울광장이 더 좋았다. 상암구장은 의자에 앉기 때문에 3~4시간 이상을 버티기 힘들다.
◆ 상업화 논란
조한진=한동안 TV만 켜면 월드컵 얘기가 나왔다. 비싼 중계료 때문에 광고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익이라는 방송 본연의 자세를 떠나 노골적으로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이 안 좋았다.
이창구=상업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위해 시설을 설치하고, 준비를 하려면 돈이 드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 가수들이 공연을 하니 10시간 넘도록 지루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전성제=길을 가다, TV를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어디에서나 '모이자'라는 광고만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간다는 자발성은 있지만, 약간 개운치 않았다. 괜히 누가 시킨 것 같았다.
김혜자=상암구장에선 일부 기업이 경품추첨을 했다. 2002년엔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승은=2002년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응원가를 불렀다. 올해는 수많은 응원가가 나왔다. 대부분 상업성을 노려 만든 것들이었다. 그래도 가장 많이 불린 응원가는 2002년 것이었다. 한국이 16강을 탈락하자 한 번에 광고판이 철수한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
정리=이철재.권호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